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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가치를 모르는 사회, 양심은 운명보다 견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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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의 가치를 모르는 사회, 양심은 운명보다 견고해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선고 공판. 김용판 전 청장의 혐의는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경찰공무원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이다. 재판부의 판결은 무죄이다.

    재판부는 혐의 3가지에 대한 증거가 모두 부족하고 내부고발자인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가 판단하기에는 권은희 과장 말고 다른 경찰관 17명은 진술 내용이 일치하니 그들의 말이 더 신뢰가 간다는 것.

    "피고인 김용판이 '선거에 개입하고 실체를 은폐할 의도로 허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분석 결과 회신을 거부하거나 지연시켰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력한 진술 증거는 주로 권은희의 진술뿐이다. 그러나 권은희의 진술 중 대부분은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거나 수사에 관여한 다른 17명 경찰관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반면 권은희를 제외한 다른 증인은 대체적으로 서로 진술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왼쪽),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자료사진)

     

    ◈ 제비는 봄이 아니고 진달래도 봄은 아니다

    이러한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두 사람이 문제 제기를 했다.

    첫 번째 인물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때 군부대 내에서 치러진 부재자투표과정에서 불법선거운동과 부정선거가 벌어졌다고 양심선언을 한 이지문 씨다. 이지문 씨(당시 중위)는 여당을 지지하도록 정신교육을 시켰고 공개투표 행위도 있었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고발했다. 이지문 씨는 그 때 국방부가 이렇게 주장했다고 증언한다.

    "이지문 중위가 소속된 부대원 500명 장병들은 한결같이 '우리 부대는 공명정대하게 투표했다. 이지문 중위 주장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증언했다."

    조직에서 버려져 일생 겪어야 할 위험과 고충을 감내하며 소리치는 사람과 그 조직 내에 몸담은 채 여전히 상관의 지시를 따르는 사람, 둘 가운데 누가 더 진실에 가까울까?

    이지문 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자신의 신분상 불이익과 보복을 무릅쓰고 나선 내부고발자 1명보다는 공범자일 수 있는 이들을 포함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단지 수적으로 많다는 단순 숫자놀음에 빠져 권 과장의 주장을 배척하는 것은 내부고발의 특성을 간과하였거나 아니면 정치적 판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번엔 박주민 변호사의 의견을 살펴보자.

    최근 서울역 부근 고가도로에서 정권 퇴진 특검도입을 외치며 분신한 이종남 씨 사건의 변호인이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서 재판부가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보지 않고 사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눈 뒤 각각의 조각을 완전 분리해 심리했다고 비판한다.

    쉽게 말해 '이것이 선거개입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가?' 확실하지는 않아? 그럼 버리고… '그 다음 이것이 은폐조작이라는 증거는 확실한가?' 확실하지는 않아? 그럼 버리고… 이렇게 하나씩 다 버리고 나면 확실한 건 없다.

    하지만 그 여러 가지 의혹들이 왜 줄줄이 벌어진걸까를 생각하면 다른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제비를 보았다지만 제비가 봄은 아니잖느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나무에 움이 트려 하지만 꽃나무 움이 봄은 아니잖느냐라고 물으면 그도 그렇다. 그러나 제비도 보고 움도 트면 봄이지 겨울일까?

    박 변호사는 이지문 중위와 마찬가지로 권은희 과장의 내부고발 진술의 가치와 다른 경찰관의 진술의 가치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재판정에 선 피고인과 같은 공동운명체인 사람들'이니 그렇다.

    조직 내에서 권 과장과 함께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사람들, 이제라도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다들 그렇지?'라고 물어본들 얼마나 진실의 가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2006년 미국 '용기 있는 삶'을 수상한 앨버트 모라. (사진=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 양심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

    2006년 미국 '용기 있는 삶'을 수상한 앨버트 모라 사건을 떠올린다.

    앨버트 모라는 미 해군 법무관이었다. 그는 9.11 테리 이후 미국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불법 검문검색, 용의자에 대한 고문에 가까운 심문을 자행하는데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국가의 권력 남용은 미국의 가치와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직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치열한 설득과 투쟁을 벌이다 거대한 조직의 집단적 반발과 견제에 떠밀려 군복을 벗고 떠났다.

    9.11 테러와의 전쟁 때 이런 발언을 한다는 건 매국노 아니면 테러동조자로 내몰릴 위험이 컸지만 앨버트 모라는 굽히지 않았다.

    그 후 미국은 유색인종들에 대한 차별적인 검문검색과 압수수색이 영화로도 폭로되고, 무고한 용의자들의 강제수용과 학대, 이라크·쿠바 관타나모 포로 수용소 및 동유럽·아프가니스탄의 비밀 감옥 등이 탄로 나며 지구촌 경찰국가의 지위가 붕괴됐다.

    최근 중동·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미국의 우방국들이 지지를 철회하거나 군사적 협조를 거부하며 발을 빼려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온갖 인종이 뒤섞이고 역사마저 짧고 경쟁과 이익에 충실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의 힘은 어디서 올까? 그것은 자유로운 소통으로 내부의 혁신을 멈추지 않기에 생기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의 비판과 끊임없는 혁신이 결국 건강함과 발전을 가져 오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걸 미국 사회가 인식하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납세자, 소비자,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거대한 자본주의 자체가 굴러갈 수 없고 미국의 자본주의가 국제표준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수정헌법 1조가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고 내부고발자 보호법도 발전해 왔다. 미국은 1970년대 후반에 공공부문 내부고발자보호법을 만들었고, 1989년에는 비정부기관 내부고발자 보호법으로 범위를 확대했고 내부고발자가 보복을 받을 경우 피해를 구제할 기구들을 잇달아 설치했을 정도이다. 그래도 정치권력, 군부가 개입하면 비리는 감춰지고 양심선언은 파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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