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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은 운명의 등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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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등급은 운명의 등급이 아니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2013년 11월 미국 필라델피아 공항에서 벌어진 사건. 시각 장애인 한 명이 안내견과 함께 국내선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여객기에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동행할 경우는 장애인 좌석 앞에 앉거나 엎드리는 게 룰이다.

    그런데 작은 여객기인 탓에 동행인 좌석 앞에 그럴 공간이 없어 안내견을 약간 떨어진 곳에 앉게 했다. 공항사정으로 이륙이 늦어지며 2시간여를 기다리면서 초조하고 당황한 안내견이 주인 곁으로 가려고 애를 썼고 승무원은 개를 제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게 하라고 장애인에게 연거푸 요구하다보니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다투게 됐다.

    송은석기자/자료사진

     

    비행기 안에서 말싸움이 벌어지자 기장은 비행기를 게이트로 되돌린 뒤 공항 안전요원을 불렀고 안전요원은 장애인과 안내견을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했다. 그러자 승객들 전체가 들고 일어나 승무원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 태워야지 왜 시각장애인 이웃을 내리게 하느냐며 모두 함께 내리겠다고 항의했다.

    결국 그 비행 편이 취소돼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을 비롯한 승객 모두는 장거리 버스로 옮겨 타고 목적지로 갔다. 비행기로 1시간 걸릴 거리를 긴 소동 끝에 4시간 걸려 갔지만 더디 가도 더불어 함께 한 그 시간은 결코 더디지 않았고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남긴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우정 - 우산도 함께 쓰고 비도 함께 맞는 것

    이 소식을 접하며 떠올린 것은 서울 광화문 지하 광장이다. 광장 통로 한 쪽에는 장애인 농성장이 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얼마동안 이곳에서 신문고를 두드리고 있었기에 눈에 익은 풍경이 되어 버렸을까? 올해로 들어서며 500일을 넘겼다.

    장애인들은 500일 넘도록 차가운 광장 바닥에서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진정성을 갖고 추진되기를 촉구했다. 장애인들은 정부가 맞춤형 복지를 하겠다고 하지만 오히려 빈곤층의 권리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항의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안에는 ‘장애인의 권익보호 및 편의증진’을 과제로 해 이런 저런 내용이 가득하다. 장애등급제 폐지 등 장애인 권리 보장, 중증장애인 상시 보호를 위한 통합 돌봄 제공체계 마련, 발달장애인법 제정 추진….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새롭고 한층 진전된 것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마저도 추진이 더디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장애등급제 폐지는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도 발생하는 과제이다. 장애로 거동이 불편하면 그에 맞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지만 장애 3등급 이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꼭 필요한 서비스라 해도 등급이 낮아 못 받는다는 것이 합리적일까? 2012년, 2013년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이 화재 때 활동보조인이 없어 숨지고 마는 안타까운 사고도 잇달았다.

    장애의 등급은 단지 의료의 관점에서 편의상 차이를 구분해 놓은 것일 뿐 장애인의 삶과 운명의 등급일 수 없다. 장애인이 처한 실제 상황과 장애의 특징에 따라 서비스를 판단해 삶의 고충을 해결해야 한다. 장애등급을 이유로 복지를 잘라내고 부양가족이 어딘가 있지 않느냐는 이유로 복지를 차단하면 어쩌자는 건가?

    발달장애인 법 제정 문제도 심각하다. 2012년 5월에 발의가 된 법이 겨우 공청회 한 번 열리고 지금껏 상임위에 묶여 있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발달장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을 때 그 내용은 학계나 장애계에서 상당히 진전된 법률안으로 환영받았다. 그래서 제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국회에 올라갔고, 총선·대선 공약이고, 복지부 장애인정책 1순위이다. 이렇게 몇 번을 약속하고 문서로 만들어 졌는데도 장애인과 멀리 떨어져 묶여 있다. 장애인에게 다가가 자기 책임을 다하려 해도 못 가게 가로 막힌 안내견처럼 그렇게 묶여 있는 것이다.

    애타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집단 삭발도 했다. 그랬더니 그 법률안보다 훨씬 못한 새로운 발달장애인법안이 새누리당의 다른 국회의원 이름으로 발의 됐다. 겉으로는 국회의원 이름을 빌렸지만 정부 시책을 베껴 늘어놓은 걸로 보아 정부가 주문한 법률안이다. 애초 법안은 비용이 많이 든다며 외면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오는 게 장애정책의 수준이다.

    ◈개를 묶으면 벌금 100만원, 사람을 묶으면 70만원

    최근 중증 지적장애인 4명을 2005년부터 2009년간 손목과 발목에 천으로 만든 밴드를 감고 그 위에 애완용 개 줄을 건 뒤 침대에 묶어 학대한 전북 완주군의 장애인 시설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있었다. 그 원장에게 내려진 처벌은 벌금 70만원, 간병인 2명은 벌금 20만원이다.

    존엄과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은 인간을 몇 년 씩이나 개줄로 침대 다리에 매어 놓는 행위가 벌금70만원, 20만원이면 양형이 합리적일까? 동물학대 행위의 벌금도 100만원이다. 죄수도 개줄에 묶이지 않는데 사회복지법인이 보호해야할 장애인을 묶는다. 변명은 늘 뻔하다. 장애인이 난폭하거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여 관리와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일 게다.

    누가 나를 개줄로 하루를 묶어 놓았다 상상하면 나는 묶였을 때, 그리고 풀려난 뒤 어떤 행동을 할까? 자기가 도와 줄 장애인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지켜보던 안내견마저도 애가 타 몸부림치는데 같은 사람끼리 이럴 수 있다니 사람 사는 세상이 무서워진다.

    올해 9월 우리나라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라 장애인에 대한 문명적 정책을 운영하고 있는지 심사를 받는다. 그 민간보고서에 위의 내용이 실릴 것이다. {RELNEWS:right}

    이 나라는 장애인의 한 표는 소중해도 장애인은 전혀 소중하지 못한 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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