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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을 했다. 계약서를 새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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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년퇴직을 했다. 계약서를 새로 썼다..."

    • 2013-12-18 06:00

    [노사문화가 신(新)경쟁력 ⑤] 외주업체라도 괜찮아.. 행복한 직장 '포메인'

    사측과 노조가 서로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노사 소통의 기본 조건이다.(포메인 제공/노컷뉴스)

     

    얼마 전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을 촉발시켰다. 한 기업의 노사문화가 기업의 이미지는 물론 제품판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노사관계는 더 이상 대립과 투쟁의 관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훌륭한 기업의 노사문화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됐다. 노사문화는 어떻게 기업경쟁력과 연결되는가. 노사문화 ‘히든 챔피언’들의 사례를 통해 그 노하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 잘나가던 포철맨.. 외주업체로 떨어지다


    최상훈(55.가명) 씨는 1984년 포항제철의 계열사인 ‘제철정비’에 입사했다. 최 씨가 입사하던 당시 포항제철은 우리 산업의 심장이었다. 자긍심 높은 ‘포철맨’으로 살아온지도 어언 25년째. IMF 외환위기도 2008년 금융위기도 몰랐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09년이었다.

    2009년 6월 29일.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에서 정비부문이 떨어져나와 ‘포메인’이라는 외주계열사가 생겨났다. 최 씨는 하루아침에 ‘포스코맨’에서 ‘외주직원’으로 전락했다. 반토막난 급여와 복지혜택. 무엇보다도 ‘더 이상 포스코맨이 아니다’라는 박탈감이 그를 괴롭혔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당시는 외주직원이 된다는 억울함 보다는 어떻게든 잘리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엄습하는 고용불안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그로부터 만 4년이 흐른 2013년 6월 30일, 최 씨는 만 55세 정년을 맞았다. 수십년 몸담았던 정든 제철소를 떠나야 하는 순간. 그러나 최 씨에게는 걱정이 없었다. “큰 걱정은 없었어요. 선배들이 다 재고용이 되는 것을 보아 왔으니까요.” 최 씨의 말이다. 실제로 최 씨는 정년퇴직을 하던 날, 근로계약서를 새로 썼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익숙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든 동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다.

    ◈ “정년퇴직 걱정 안해요”...'고마운 직장'

    ‘밀려난 외주업체’에 불과했던 포메인은 불과 만 4년 만에 포스코 계열사와 견주어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직장’으로 변신했다. 2009년 회사 설립초기부터 정년퇴직자들은 퇴직 이후를 걱정하지 않았다. 퇴직자들은 재고용을 통해 급여의 80%를 보장받고, 자녀학자금 등 복리후생도 그대로 유지된다. 지난 5년 동안 정년퇴직자 28명 가운데 희망자(23명)들은 전원 재고용됐다.

    자녀 학자금 지원은 물론, 직원 건강검진, 동호회 활동지원, 전 직원 단체보장 보험가입 등 복리후생도 포스코 본사보다는 못하지만 외주사 가운데는 가장 후한 편이다. 전 직원들은 또 2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체험여행을 한다. 그동안 성과금도 해마다 300% 이상 지급됐다. 직원들의 근무만족도는 창사 2년차인 2010년에 64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93점으로 수직상승했다.

    포메인이 일궈낸 기적같은 변화는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시작됐다. “사장실에 있는 고급술은 아마 노동자 대표가 와서 다 드셨을 겁니다.” 배양해 포메인 대표이사가 농담을 건넸다. 배 사장은 저녁에 노동자 대표에게 전화가 오면 선약이 있더라도 약속을 취소하고 일단 만난다. 사장실에서 단촐하지만 의미있는 술자리가 일주일에 한 번은 벌어진다. 직원들이 선출한 박상태 노동자 대표가 요구사항을 들고 오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날이라도 해결된다. 들어줄 수 없는 요청에 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숨김없이 설명한다.

    4년 연속 임금 무교섭 타결의 기록을 세운 포메인. 잦은 노사간 만남이 큰 변화를 낳았다. (사진=포메인 제공)

     

    ◈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노동자 대표부터 만난다

    포메인에는 노조가 없다. 외주사로 밀려나던 당시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면 정말 회사에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서 초창기에 노조 결성이 무산된 탓이다. 대신 ‘노경협의회’라는 것이 결성됐다. 경영진 대표 4명과 노동자 대표 4명이 한 달에 한 번씩 공식 협의를 갖는다. 여기에다 간사를 통한 비공식 협의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뤄진다는 것이 박상태 노동자 대표의 말이다.

    경영 상황도 투명하게 공유된다. 한 달에 한 번씩 노동자 대표와 팀장급 이상 간부가 참가하는 경영설명회가 열리고 월별 매출액이 고스란히 공개된다. 분기마다 열리는 전 직원 경영설명회에서는 매출은 물론 수익률까지 알려준다. 수익이 나면 성과금이 지급되고, 매출이 떨어지면 직원들이 비용절감에 나선다. 최근 철강경기 하락으로 회사 매출이 감소하자, 노동자 대표들은 수천만원이 드는 송년 잔치와 체육대회를 생략하고, 1년에 2번 지급되는 작업복도 1번 지급으로 줄였다.

    ◈ “직원은 머슴 아냐”.. 동등한 관계가 출발점

    노사가 자주 만나다 보니 2010년부터 임금협상은 언제나 무교섭으로 타결됐다. 4년 연속 무교섭 타결이다. 사전에 잦은 만남으로 이견이 상당부분 조율이 되고, 신뢰가 쌓이는 탓이다. 박상태 노동자 대표는 전직 노조부위원장 출신이다. 박 대표는 “언제고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돼 있고, 문제가 생기면 노조결성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면서도 “아직까지 노동자들이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그만큼 노사간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뜻이다.

    조직이 안정되고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회사의 매출도 상승한다. 반대로 제철소의 정비를 맡고 있는 업무 특성상, 사기가 떨어지면 불량이 속출한다. 배양해 사장은 “노사관계가 좋아야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하고, 고객 만족에 더 신경 쓸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포메인은 2년 연속 포스코 최우수, 우수 파트너사로 선정됐고, 무재해 5배수를 달성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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