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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 안 해서" 성공했다…'할머니들의 하라주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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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 생활경제

    "현대화 안 해서" 성공했다…'할머니들의 하라주쿠'

    • 2013-10-31 06:00

    [전통시장, 지역과 소통하라 ③] 우리 지역의 ‘수요’를 파악하라

    전통시장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 CBS노컷뉴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영국과 일본의 흥미로운 성공 사례들을 둘러봤다. 내려진 결론은 한마디로 압축됐다. 바로 '지역사회'였다. 자신이 위치한 지역과 소통할 때 비로소 전통시장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과 시장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5차례에 걸쳐 전통시장이 살아나기 위한 조건들을 살펴본다. 세 번째 순서는 지역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수요’를 찾아내 독특한 시장으로 탈바꿈한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1. 전통시장 왜 살려야하나…생존의 조건은?
    2. 우리 지역의 ‘흥행요소’를 찾아라
    3. 우리 지역의 ‘수요’를 파악하라
    4. 지역의 집객요소인 ‘대형마트’와 상생하라
    5. 우리 지역의 특징에 주목하라


    ◈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스가모 시장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절 ‘고간지’에는 병을 낫게 해준다는 속설이 있어 항상 노인들로 붐빈다. (사진=윤철원 기자)

    일본 도쿄 중심을 순환하는 JR 동일본 야마노테선, 스가모 역에 내리면, 스가모 시장 상점가가 나타난다. 스가모 시장 역시 70~80년대 일본 경제의 버블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당시만 해도 이곳의 상점들도 다른 시장의 상점들과 다를 바 없는 상품을 판매했다. 급속한 고령화와 경제 거품이 깨지면서 스가모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시장을 살리려 나선 상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시장 인근의 사찰을 자주 찾는 ‘노인’들이었다.

    시장 인근에는 에도시대(1596년)에 세워진 '토게누키 지죠 고간지'(高岩寺 이하 고간지)라는 유명한 절이 있다. 질병을 없애고 건강을 기원해준다는 곳으로 소문이 나, 옛부터 노인들이 많이 몰렸다.

    상인들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판매하고 있는 품목 중에서 노인들이 좋아할만한 상품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한 것뿐만 아니라 아예 노인용 상품만 취급하는 상점들도 생겨났다.

    과일 가게는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모과를, 잡화점은 지팡이와 염색약을 진열대 맨 앞에 배치했으며, 일반 양장점은 노인 전용 양장점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할머니들의 하라주쿠’가 탄생했다.

    ◈ 모든 것이 노인 위주.. 바쁜 사람은 안와도 돼

    스가모 시장은 철저히 노인들의 수요에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이 녹록치 않은 노인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을 고수하고 있다. 시장을 찾은 스즈키(80·여) 씨는 “모자가 2,000엔인데 백화점에서 사려면 5,000~6,000엔은 줘야한다”며 “백화점보다 디자인도 더 다양하다”고 말했다.

    또 노인들이 편안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돕는 작지만 큰 배려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가격표는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정도로 크고, 거리 곳곳에 벤치와 쉼터가 마련돼 노인들은 쇼핑하다 힘들면 앉아 쉬며, 서로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저렴한 가격과 큰 가격표. 스가모 시장의 모든 환경은 노인 손님들에게 최적화 돼 있다. (사진=윤철원 기자)

    대부분의 재래시장들이 대형마트의 편리성을 따라가기 위해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마련하는 등 시설 현대화에 목을 매지만 스가모는 오히려 옛날 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려 애를 쓰고 있다.

    마츠미야 상점가 진흥조합 부이사장은 “스가모 시장은 바쁜 사람들이 오길 바라지 않는다”며 “천천히 구경하며 쇼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이어갈 것”이라며, “아케이드는 오히려 빛을 가려 좋지 않다”고 말했다.

    노인들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한 스가모 시장은 매출도 자연스럽게 올랐다. 이케부쿠로 역 부근 지하 상점들의 매출액은 몇 년새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이 곳은 최근 5년간 매출이 15%나 상승했다.

    ◈ 전세계 먹거리, 여기 다 모였네

    길 양쪽으로 천막 좌판이 늘어선 런던 리들리로드 마켓. 전세계 이민자들이 사고 파는 이국적인 먹거리와 생필품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사진=장규석 기자)

    영국 런던 북동부 달스톤 킹스랜드(Dalston Kingsland)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면 건너편에, 길게 뻗은 길 양쪽으로 늘어선 시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국적인 먹거리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리들리 로드(Ridley Road) 마켓’이다.

    20세기 초 유태인 지역의 중심지였던 리들리 로드는 이후 한세기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서인도제도와 터키, 그리스,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정착한 지역으로 변모한 것.

    인근에 있던 공장들이 폐쇄되고 직원들이 더 이상 시장을 찾지 않으면서 한때 침체기를 겪었던 리들리 로드 마켓은 지역의 변화된 수요에 맞춰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민자들이 필요로 하는 먹거리와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고, 지금은 런던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시장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들여온 과일과 채소 등 먹거리를 늘어놓은 노점상들은 큰 소리로 손님들을 불렀다. 그 사이사이 알록달록한 아프리카 스타일의 옷을 늘어놓은 좌판, 이국적인 장신구, 차와 향신료 등을 파는 가게 등이 눈길을 끌었다. 시장은 평일 오후임에도 생각보다 많은 쇼핑객들이 찾아 활기로 넘쳤다.

    ◈ 리들리 로드의 미덕...‘물건도, 좌판도 싸다, 싸다’

    리들리 로드의 가장 큰 미덕은 저렴한 가격이다.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이민자들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은 항상 붐빈다.

    15년째 과일가게를 하고 있는 폴 스미스 씨는 “슈퍼마켓과 달리 여기서는 과일을 바구니 당 가격으로 팔고 있고, 한 두 개 정도는 원하면 덤으로 주기도 한다”며 “슈퍼마켓보다 몇 배는 쌀 것”이라고 장담했다.

    리들리로드의 가장 큰 미덕은 형편이 어려운 이민자들도 편히 거래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다. 시장 좌판을 임대하는 비용도 런던 시장 가운데 가장 싼 편이어서 창업도 쉬운 편이다. (사진=장규석 기자)

    리들리 로드의 또 다른 강점은 '저렴한 노점 사용료’다. 리들리로드 마켓은 길가에 들어선 상점과 함께, 전면에 노점들이 이중으로 늘어서 있는 구조다. 시장을 직접 관리하는 지방정부는 모두 180개쯤 되는 노점 좌판을 싼 가격에 임대해주고 있다.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이민자들이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시장에는 항상 노점 좌판 몇 개를 일부러 빈 채로 남겨두는데, 지금 시장에 팔지 않는 물건을 취급하겠다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먹거리와 팔거리를 가지고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고, 시장의 상품은 더욱 다양해졌다.

    이민자들의 수요에 주목한 리들리 로드 마켓은 이민자들이 물건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면서 이국적인 공간으로 변모했고, 이제는 현지인과 관광객들까지 찾는 명물로 성장했다.

    노인과 이민자의 수요에 부응한 도쿄 스가모와 런던 리들리로드의 사례처럼, 침체된 시장도 지역의 특정한 수요에 집중하면 살아날 방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인들이 지역의 수요에 민감해지는 것과 동시에, 또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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