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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한글④]민족학급 '핏줄의 마지노선'



사건/사고

    [일본 속의 한글④]민족학급 '핏줄의 마지노선'

    • 2013-10-10 06:00
    '외계어'니 '일베어'니 한글을 팽개치는 시대. 하지만 멀고도 가까운 60만 명의 재일동포들은 지금도 무관심과 갖은 역경 속에 우리 말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본 현지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의 뜻을 다시 새겨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고국 무관심에 두 번 웁니다
    ②한국어, 그들에겐 '자신감'
    ③중1에 '가갸거겨' 배우는 까닭
    ④민족학급 '핏줄의 마지노선'
    ⑤이대로 가면 '일본만 있다'

    지난 달 26일 일본 오사카시립 샤리지초등학교에서 재일동포 아이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민족학급. (사진=이대희 기자)

     



    “인사! 성생님 앙녕하세요 여러붕 앙녕하세여”(선생님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달 26일 일본 오사카(大阪)시 이쿠노(生野)구에 위치한 오사카시립 샤리지소학교(舍利寺小學校, 한국의 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참새 같은 한국어가 들렸다.

    일본 오사카시가 세운 학교에서 한국인의 뿌리를 가진 아이들을 대상으로 ‘민족학급’수업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민족학급이란 일본 국·공립 학교에 다니고 있어 고국을 접할 기회가 없는 재일동포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한국어나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수업으로, 오사카에만 2000여 명이 수업을 듣고 있다.

    특히 이날 수업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기초적인 한국어 수업이 진행됐다.

    한국어는커녕 일본어도 능숙하지 못한 아이들이라, 수업은 민족학급 강사의 질문을 통해 한국어로 답변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이들에게 일본어로 오늘의 날짜를 물으면 ‘월’과 ‘달’ 사이에 어떤 숫자를 넣을지 학생들의 한국어 답변을 듣는 식이다.

    자신의 한국 이름으로 '이름판'을 만드는 민족학급 학생. (사진=이대희 기자)

     



    한국에서 지원된 교재로 수업도 진행됐다. ‘호랑이 좋아해요’라는 문장을 반복해 읽힌 뒤, 각 학생이 실제로 좋아하는 동물을 ‘좋아해요’ 앞에 넣어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이날 수업의 절정은 ‘이름판’ 만들기였다. 자신의 이름을 플라스틱 판에 찰흙으로 붙여 이름을 만드는 일종의 ‘놀이’였다.

    수업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이뤄졌으며, 아이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호기심에 넘쳤다.

    교실 벽면에는 한글과 한글의 발음을 표시하는 카타가나가 병기돼 표시돼 있었다. 칠판 옆에는 ‘ㅏ·ㅓ·ㅕ·ㅛ’ 등 모음을 발음할 때 입 모양이 만화 캐릭터로 그려져 있었다.

    샤리지소학교는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학교지만 오직 민족학급만은 한글과 한국 문화로 가득차 있었다.

    ◈ 1주일에 한 번뿐인 방과후 수업이지만…뿌리를 찾는 ‘인권교육’

    일본 오사카 샤리지초등학교 민족학급 벽에 걸려 있는 민족학급 관련 자료. (사진=이대희 기자)

     



    재일교포 3세이자 민족학급 강사인 양천하자(55·여) 씨는 “아이들을 1주일에 1번 45분밖에 가르칠 수 없다”면서 “짧은 시간 안에 한국어나 춤, 음악이나 역사, 지리 등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이날 민족수업은 양 씨뿐 아니라 일본인 교사 2명이 같이 수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1주일에 한 번밖에 만날 수 없는 민족학급 강사를 낯설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씨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가르침이 없이 태어난 아이들이 민족학급을 통해 즐겁게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말했다.

    일본 학교 당국자도 학생 스스로 존엄성을 배울 수 있는 인권교육으로서 민족학급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리지소학교 후나토메 마사요(船留昌代·53·여) 교장은 “평교사 시절부터 오사카 시내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반드시 재일동포 아이들이 있었다”면서 “아이가 민족이나 자신의 한국 이름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민족교육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스스로 뿌리를 찾는 민족학급은 아이 스스로 존엄성과 자존감정을 느끼는 인권교육”이라고 강조했다.

    ◈ 민족학급은 재일동포의 일본 흡수를 막는 ‘마지노선’

    이런 민족학급은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가 결국 일본인으로 흡수되는 일을 막는 '핏줄의 마지노선'이다.

    이날 수업도 30%만 한국 국적 아이들이었고 70%는 부모 한 쪽만 한국인인 이중 국적이나 일본 국적 아이들이었다.

    {RELNEWS:right}재일교포 3세이자 민족학급 강사이기도 한 김광민(42) 코리아 NGO센터 사무국장은 “날이 갈수록 재일교포와 일본인간 결혼이 늘고 있다”면서 “일본에 살면서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 주택이나 금융, 취직에서 불편함이 크기 때문에 귀화도 매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민족학급에서만이라도 민족적인 것을 접하게 하려고 한글 이름을 사용하게 한다”면서 “민족학급에서라도 우리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챙겨주지 않으면 금세 일본으로 흡수될 것 같은 걱정이 든다”고 우려를 표했다.

    민족학급 강사 양천하자 씨도 “최근 한국정부에서 민족학급에 예산을 지원해 너무나도 감사하다”면서 “이런 관심이 그치지 않고 재일동포 아이들이 민족에 대해 더 학습할 수 있도록 시간을 늘리는 등 정부 차원에서 일본 측과 교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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