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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기 사건은 남성해방운동의 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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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26일 한강에서 뛰어내린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시신으로 발견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남성연대는 “남성연대의 현실이 너무나 열악했고 사회적 관심도 너무나 부족해 이를 타계하기 위해 고민해왔다”고 설명하며 남성운동에 대한 고인의 열정과 헌신을 알아달라고 당부한다.

남은 사람들은 투신자살한 전직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중. 이념과 생각의 차이를 접어두고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이 빚을 지고 강으로 뛰어내리는 퍼포먼스까지 펼쳐야 했던 남성운동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 절반의 복종, 절반의 지배, No!

남성해방운동 내지는 남성운동은 사회 속에서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다는 인식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운동이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남성 의식화 모임’이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들어 “인류의 절반은 지배하고 절반은 복종하는 상황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남성해방운동의 내용을 알리는 글이 잡지〈리버레이션 Liberation〉에 실리면서 본격적인 남성운동이 시작됐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누린다. 그러나 모든 남성은 아니다. 남성의 다수 역시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 기회를 못 얻고 불평등도 겪으며 좌절을 경험한다.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의 성차별 때문에 여성인 자신이 고생한다고 이유를 댈 수도 있다. 그럼 남성 위주의 유리한 사회에서 남성은 무슨 이유를 댈 수 있을까? 자신의 무능력이라는 수치스러움과 상실감이 더 무겁게 다가오기도 한다. 거기에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 기회의 불평등, 남자라고 해서 주어진 짐도 너무 무겁다. 자칫 이런 남성의 열등감과 좌절이 약자인 여성과 아동, 노인, 외국 이주민에 대한 공격으로 분출되는 사회병리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현대 사회, 포스트모던 사회로 접어들면서 기존의 가치관과 사회구조가 뒤바뀌고 있다. 남성 고유의 무대는 좁아진다. 남성끼리도 치열한데 여성하고도 대등한 관계에서 겨루어야 한다. 사회는 점점 남성에게 유리한 제도를 지워 나가고 여성에 대한 별도의 할당제나 우대제도가 시행될 때도 있다. 이에 대한 반발과 대안 모색으로 남성운동이 벌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남성운동은 ‘가족과 사회의 주도권을 잡아 이끌어가는 전통적인 남성상’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남성운동이 있고, 반대로 여성과 가사.양육 등을 나누는 등 양성평등을 받아들이며 새 남성상을 정립해 나가려는 입장도 있다. 다른 기준으로 아버지로서의 남성 문제를 핵심이슈로 다루는 입장도 있고, 가족과 아버지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는 남성운동도 있다.

성재기 대표가 이끈 남성연대는 여성가족부 폐지, 군가산점 제도의 부활, 여성도서관 폐지 등을 주창해 왔으니 전통적 남성주의 회복, 가족을 넘어 사회전반으로의 남성운동 확산을 목표로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남성운동을 특징에 따라 분류하면 대개 다음의 유형에 속하거나 몇 개의 특질을 동시에 내보이기도 한다.

1. 전형적인 보수파 남성운동은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구분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내세우며 여성은 자녀양육과 살림을 맡는 게 순리라는 태도를 취한다. 사회 속에서의 여권신장에 대해 부정적인 건 당연.

2. 남성해방운동도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크고, 너그러워야 하고, 능력 있어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여가는 슈퍼맨 남성에 대한 부담감이 억압으로 작용해 남성도 힘들다는 것. 너무 큰 기대여서 이에 못 미치는 남성은 자기 학대, 상처받은 자존감으로 고생하는데 여성운동과 여성 위주 정책들은 여성의 지위를 높인다면서 오히려 사회적인 역차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남성해방운동의 입장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현실적인 권리를 쟁취해 내자는 것인데 성재기 대표의 남성연대는 여기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

3. 그런가하면 진정한 남성성을 정신적 차원에서 먼저 회복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30여 년 전 뉴욕 타임즈의 서평으로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책 로버트 블라이의 “아이언 존”(우리말 번역본은 ‘남자만의 고독’)이 대표적인 예. 남성 속에 잠들어 있는 야성과 투지 등 멋진 남성성을 저버리고 왜 마마보이처럼 되어 가는가, 그러니 사회를 헤쳐 나가고 자아성취를 이루는데 더 힘들어진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스승, 투사, 영웅, 야성미, 방랑자 등 고독하며 장엄한 남성이미지를 살려 당당한 남성으로 회복시키자는 것. 성재기 대표가 군 경험에 대한 자부심과 수영에 대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강물에 뛰어든 것도 이런 특질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권신장, 양성평등에 동조하는 남성운동들도 살펴보자. 가부장적 문화는 모순이고 부조리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남성도 차별적인 기득권을 버리고 새로운 사회행동양식을 갖춰 나가자는 입장도 있다. 상당히 급진적인 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남성다움이 남성들의 진정한 자아발견과 자기실현에 방해가 된다며 ‘강해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라는 기존의 남성적 가치를 벗어나 부드러움과 여성성과의 조화를 강조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의 유행도 그런 맥락일 듯. 흔히 자유주의적 입장이라고 부른다.

사회주의적 관점도 있다. ‘남녀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다. 사회구조가 왜곡되어 있고 부패했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본성이 나쁜 것도 문제가 많은 것도 아니다. 사회 속에서 통제 받고 차별 당하고 억압 받기 때문에 그렇다. 남성은 억압도 당하지만 또 지배하는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을 감시하고 억압해야 한다.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이다. 새로운 평등이념과 사회체제가 필요하다.’ .... 이런 식의 입장이다.

■ 남성운동, 그저 해프닝이 아니다

살펴 본대로 남성운동은 모두 마초적이고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은 않는다.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운동을 경계하지만 남성 역시 남성운동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비하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요인들이 성재기 대표의 고민을 더 깊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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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90년대 초부터 좋은 아버지 되기 운동이 붐처럼 번졌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 최초로 보인다. 그 이후 미국 프라미스 키퍼스 promise keepers의 한국 상륙으로 시작된 ‘남성신앙 대각성운동’도 있다. 그밖에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 남성의 전화, 남성운동협의회 등이 생겨났다.

2006년에 ‘반페미니즘남성해방연대’가 성재기 씨에 의해 결성되고 2008년 다시 ‘남성연대’라는 단체가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는데 구미 선진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아직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리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거에는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억압적이고 사람을 옭아맸다면 현대문명은 인간을 돈으로 환산해 따지는 반인간적이고 누구나 인간을 파괴할 힘을 지닌 위험한 사회이다. 한국의 남성, 한국의 아버지를 되찾는 건강하고 적극적인 남성해방운동을 기대한다.

서구 남성운동도 시작 단계에서는 단순한 해프닝 대접을 받았고 그것이 운동가들의 고민이었다. 내가 남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남자로서 산다는 건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내게 부여된 남성성에서 바람직 한 것과 나를 옭아매는 부정적인 건 무얼까 ...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성찰이 먼저 이뤄진다면 강건하고 상생을 도모하는 남성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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