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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이 바리깡 밀어요"…학생인권조례 '실종'



사건/사고

    "담임이 바리깡 밀어요"…학생인권조례 '실종'

    文교육감 이후 상당수 학교서 '두발 제한' 슬그머니 부활…위법 논란

    (자료 사진)

     

    서울시 노원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거의 반(半)삭발에 가깝다.

    학교 규정상 앞머리는 7cm, 뒷머리와 옆머리가 1cm를 넘지 않도록 돼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단정하지 않으면 바로 두발 제한에 걸린다.

    이 학교에 다니는 2학년생 김모(17) 군은 “규정대로 한다기보다 담임선생님들이 완전히 삭발하게 만든다”며 “담임선생님이 직접 바리깡으로 민다”고 했다.

    김 군뿐 아니라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올들어 두발 제한이 지난해에 비해 훨씬 빡빡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 학교 3학년생 정모(17) 군은 “1년 전엔 그래도 좀 나아지는 것 같더니 올해는 옆머리를 더 올려쳐야 되고, 3학년은 웬만하면 검사를 안했는데 부쩍 검사를 많이 한다”고 했다.

    (자료사진/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지난해 초 서울시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 17개월이 지났지만, 학교 일선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학생인권조례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문용린 현 교육감이 지난해 연말 취임하면서다.

    실제로 문 교육감 취임 이후 학생인권조례에 아랑곳없이 두발이나 복장 제한을 강화하는 학교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제 12조에서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복장에 대해서는 학교 규칙으로 제한이 가능하되, 두발 부분에 대해선 학생의 의사에 반해 지나치게 규제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그 효력을 두고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 서울시의회가 법정 공방을 벌이며 으르렁대는 동안 일선 학교에서는 이에 반하는 규정들이 슬그머니 생겨나고 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서울 시내 20곳가량 학교의 재학생들을 만나본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그대로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았다.

    복장이나 염색에 대한 제한을 두는 건 물론, 머리 길이 등 두발에 대해서도 학교 규칙으로 제한하는 학교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서구에서 만난 한 중학생은 “앞머리는 눈썹 밑으로 내려오면 안 되고 옆머리는 귀를 덮으면 안 된다”며 “이걸 따르지 않다가 걸리면 벌점을 받는다”고 했다.

    이어 “옆 학교는 애들이 머리도 기르고 염색도 하고 다닌다”며 “우린 그렇게 하면 걸리는데, 그런 애들을 보면 부럽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학칙으로 제한할 수 있긴 하지만 복장 규정 역시 학생들의 '복장'을 터지게 만들고 있다.

    강서구의 한 고등학교는 항상 흰색 발목 양말에 구두를 신어야 한다. 3cm이상의 굽이 있는 구두나 운동화를 신어선 안 된다.

    이 학교에 다니는 김모(16) 양은 “가방도 검은색, 외투도 검은색을 입어야 한다"며 "겨울엔 색깔 있는 패딩을 입으면 안 되는데 솔직히 이런 것까지 제한하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김 양의 친구 신모(16) 양도 “눈이나 비올 때 구두를 신으면 너무 힘들다”며 “융통성 있게 운동화로 바꿔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두발 및 복장 제한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지만 왜 제한하는지, 학생인권조례가 있는지 설명해주는 선생님은 거의 없다.

    영등포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알지만 선생님들은 학교에선 안 알려주고, 그냥 안 된다고만 한다”고 했다.

    은평구의 한 고등학생 서모(16) 양은 “이번에 전교회장 후보 공약 1호가 '파마할 수 있게 해주겠다'였다"며 "하지만 선생님이 그건 안 된다며 다 뺐다”고 했다.

    "파마하고 싶어도, 염색하고 싶어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설명을 안 해주니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학생들의 생활 지도를 담당하는 교사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이미 두발은 자유화가 됐는데도 학생인권조례와 상관없이 두발을 제한하는 학칙이 속속 생겨나고, 교사 입장에선 이에 따라 규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는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규칙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강요하는 경우 지도에 일관성도 없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정 공방이 끝나기 전엔 학생인권조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RELNEWS:right}시교육청 인권교육센터 한 관계자는 "무효가 되든 취소가 되든 법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전까진 법률이 적용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법률적인 효력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따라서 문 교육감과 이에 편승한 일부 학교들이 위법 논란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영선 학생인권국장은 “학생들에게 '교육감이 바뀌어 인권조례가 없어졌다'는 식의 잘못된 법 상식을 주입시킬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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