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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카운슬러'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 그 잔혹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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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영화 어때] '카운슬러' 만인이 만인에게 늑대, 그 잔혹우화

    약육강식 자연상태로 치닫는 세상 차갑게 관찰…각본 연출 캐스팅 삼박자 스릴러 새 장

     

    외화 좀 본다는 관객들은 '리들리 스콧 감독, 코맥 맥카시 각본, 마이클 패스벤더·페넬로페 크루즈·카메론 디아즈·하비에르 바르뎀·브래드 피트 주연'이라는 조합에 환호했을 터다.

    영화 '카운슬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러한 환호에 충분히 보답할 만한 만듦새를 지녔다.
     
    하지만 화려한 연출과 통쾌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에이리언(1979)' '블레이드 러너(1982)' '델마와 루이스(1991)' '글레디에이터(2000)' '프로메테우스(2012)' 등의 전작을 통해 묵시록적인 세계관을 드러내 온 리들리 스콧 감독이다.

    더욱이 영화로도 만들어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원작자로서, 부조리한 세상을 건조한 필체로 그려 온 작가 코맥 맥카시가 직접 각본을 썼다는 데서 이 영화는 애초 비극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젊고 유능한 변호사 카운슬러(마이클 패스벤더)는 최고급 아파트와 자동차, 연인 로라(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청혼하기 위해 준비한 최상급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자신의 재력을 크게 웃도는 씀씀이로 재정 위기에 몰린다.

    그는 지하범죄 세계와 연결된 사업가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가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마약 밀매 사업을 제안하자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마약중개인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를 사이에 두고 멕시코의 마약 밀매조직과 거래를 시작한다.

    로라가 청혼을 받아들인 뒤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던 카운슬러는 운반 중이던 2000만 달러어치(약 214억 원)의 마약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을 위기에 처한다.
     

     

    세계 최악의 범죄도시로 낙인 찍힌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 후아레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유쾌해 할 관객은 결코 없을 터다. 상상을 뛰어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곳곳에서 소소한 웃음을 부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쓴웃음이 되고 만다.

    그만큼 카운슬러는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은,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관조의 시선으로 오롯이 보여 주는 데 온힘을 쏟는다.
     
    카운슬러에는 작품의 주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두 개의 섹스신이 나온다.

    먼저 극이 시작되자 마자 펼쳐지는 카운슬러와 로라의 그것. 대낮에 새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손길이 오가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신은 교감·공감으로서의 '섹시'한 섹스를 보여 준다.

    나머지는 라이너가 카운슬러에게 들려 주는 연인 말키나(카메론 디아즈)와의 섹스 회상신으로, 라이너는 이를 두고 "말키나가 자동차와 섹스를 했다. 섹시함을 넘어선 적나라함에 두려웠다"고 전한다. 이는 자신의 욕구충족에만 급급한 이기적인 섹스의 전형으로 읽힌다.
     
    여기서 말키나라는 인물에 관심이 쏠릴 텐데, 치타 문신이 어깨와 등 전체를 덮은 그녀는 사회화된 카운슬러나 로라, '덜' 사회화된 라이너, 웨스트레이와는 차원이 틀린 자연상태 그대로의 인간이다.

    고해성사를 하겠다며 신부를 찾아간 말키나가 "용서할 필요 없으니 들어만 달라"고 떼쓰는 장면은 철저히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그녀의 캐릭터를 오롯이 드러낸다.
     
    '주인공 카운슬러처럼 허황된 욕심을 부리면 몰락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이 영화를 받아들일 관객은 거의 없을 듯하다. 말키나 같은 사람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극중 범죄 세계는 결국 처단된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이 작품에서는 철저히 생략된 까닭이다.

    오히려 범죄 조직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쌓아 온 윤리와 도덕을 비웃기라도 하듯 끝없는 욕망을 무기로 자신들의 세력을 더욱 넓혀가는 모양새다.
     

     

    이러한 맥락에서 카운슬러는 홉스(1588-1679)가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표현한,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공격적인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 되는 '자연상태'에 대한 잔혹한 우화로 읽힌다.

    극중 욕망이 들끓는 용광로 같은 도시 후아레스에서는 인간 존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의 범죄 조직원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의 그것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고, 주민들이 조직원들의 범죄를 돕는 시스템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아이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 살리려 애쓰지 않고 그 사람이 지닌 물건과 옷가지 등을 갖고 달아난다. 공권력은 범죄 조직으로부터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로잡자"고 외치는 집회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이 영화는 공생을 위한 사회계약이 무너진 약육강식의 사회가 특정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 지구적인 현상임을 고발하고 있다. 문명화된 도시에 치타가 등장하거나 치타 무늬 옷을 걸친 사람들이 나오는 다수의 장면을 통해서다.

    극중 카운슬러는 오르페우스를 닮았다.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내려갔다가 "지상으로 데려가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내를 잃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말이다.

    마이클 패스벤더라는 걸출한 배우는 이 비극적 인물의 흥망성쇠를 격한 말이나 몸짓 없이도 절묘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극 말미 그의 오열 장면이 더욱 절절한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리라.

    말키나를 연기한 카메론 디아즈도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전작에서는 볼 수 없던 꾸밈 없는 관능미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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