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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조연배우의 꿈 "분장팀장 아내에게 분장받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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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차 조연배우의 꿈 "분장팀장 아내에게 분장받는 그날…"

    [인터뷰] '관상'으로 새로운 배우인생 열어젖힌 이윤건

    영화 ‘관상’에서 사헌부 관리 조상용을 연기한 이윤건(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선배님들이 어디서 데려왔냐, 조선시대서 온 사람같다고 해주셔서 힘이 많이 났죠." 

    영화 '관상'에서 왕위 찬탈한 수양대군(이정재)에게 죽을 각오로 백성을 보살피는 왕이 돼달라고 직언하는 올곧은 선비.

    관상가 내경(송강호)을 자신이 모시던 김종서(백윤식)에게 소개한 사헌부 관리 조상용을 연기한 이윤건(43)은 극중 캐릭터처럼 울림이 좋은 목소리에 바른 이미지로 신뢰감을 줬다.

    사극 장르라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아 개봉 이후에도 수염을 기르고 있다는 그는 1993년 연극 '죄와 벌'로 데뷔해 올해로 연기한지 20년이나 된 베테랑 배우다.

    영화는 1998년 '러브러브'를 시작으로 '아나키스트'(2000),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청연'(2005) 등에 출연했는데, 스캔들에서 '통하였느냐?'는 명대사를 던진 이가 바로 그다.

    관상에서는 송강호, 김혜수, 백윤식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믿음직스런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판 선배이자 아내인 안희준 분장팀장도 "여태 영화 중 가장 좋다"고 칭찬해줬다.

    관상 흥행 이후 만난 그는 "이찬영이란 본명 대신 예명 이윤건으로 활동한 첫 번째 작품인데 흥행이 잘돼 정말 기분이 좋다"며 "흔히 하관이 좋으면 말년운이 좋다는데 어느 듯 중년에 접어든 만큼 이 영화를 기점으로 운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활짝 웃었다.

    또한 "아내는 분장팀장이라 주연급 배우의 얼굴을 만지는데 저도 빨리 그분께 분장 받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소박한 듯 간절한 꿈을 전했다.
     

    '관상'이 900만 관객을 돌파한 소감은?

    "이렇게 대박작품에 참여한 자체만으로 감사하다. 제가 캐스팅될 당시에는 송강호와 한명회 역할의 김의성 선배 정도만 확정된 상태였는데, 이후 백윤식 이정재 김혜수 이정석 조정석 등 캐스팅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이건 스타워즈구나, 대박을 예감했다."
     
    주눅 들지는 않았나?

    "떨렸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캐스팅되면서 조상용에 대해 감독님과 나눈 얘기도 있고 엘리트 집안출신의 올곧은 선비의 모습을 체화시키려 노력했다. 다행히 선배님들이 어디서 데려 왔냐, 조선시대서 온 사람 같다고 해주셔서 힘을 내 잘할 수 있었다."
     
    촬영 첫날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말 타는 장면을 산속에서 찍다가 낙마해서 코뼈가 부러지고 미간이 찢어졌다. 천만 다행으로 수술이 잘되고 회복이 잘돼서 일정에 큰 차질 없이 참여하게 됐다. 중상을 입었으면 배역을 잃을 뻔했다. 지금도 아쉬운 점은 제 바스트 샷을 못 찍고 떨어진 것이다. 배우들은 단독 바스트 샷에 욕심이 있다."
     
    이름을 바꿨는데 일이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나?

    "그런 바람도 있고 새로운 출발의 의미가 크다. 1993년 데뷔해 올해 '배우 나이'로 20살이 됐다. 다시 시작하자란 생각에 원래는 저를 배우로 만들어주신 극단 쎄실 대표인 채윤일 선생께 작명을 부탁드렸는데, 전문가에게 가보라고. 윤택할 윤에, 세울 건자를 주셨는데, 장동건 고소영 씨의 아들 이름을 지어준 분께 받았다.(웃음)"
     
    앞서 '스타워즈'라고 했는데, 고수들과 작업하면서 배운 연기 한수가 있다면?

    "초반 연홍(김혜수)과 내경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내경이 '쑥떡이 맛있었는데'하며 잠꼬대를 하면서 깬다. 그 장면 촬영에 앞서 제가 새해 인사 차 촬영장에 가는 길에 동네 떡집에서 쑥떡을 맞춰갔다. 송강호 선배가 쉬는 시간에 떡을 맛있게 먹고 그 장면을 찍었는데 갑자기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를 하는 거다. 정말 생활이 곧 연기임을 느꼈다."
     
    영화 ‘관상’에서 사헌부 관리 조상용을 연기한 이윤건

     

    사극에 잘 어울리는 외모다. 실제로 조선시대 사람처럼 느껴졌다.

    "전 사극을 좋아한다. 어떤 가치를 가진 인물인지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이 좋다. 스캔들에서는 사모하는 형수(전도연)를 욕보인 상대를 응징하는 인물이었다. '청연'에서는 독립군이었고, 관상에서는 죽을 자리에서 직언을 하는 진짜 선비였는데, 이처럼 자신의 신념에 목숨을 건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다. "
     
    평소에도 도덕과 정직을 중시하나?

    "바른생활 사나이란 소리를 듣는데, 좋기도 하면서 배우로서 그런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연극할 때는 악역도 많이 했다. 스크린에서도 제가 '파파로티' 빼고 '소름' '청연' '나는 행복합니다'까지 윤종찬 감독의 전작에 다 출연했는데,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현빈 형으로 나왔는데 인간 말종이었다. '아나키스트'에서는 일본군 앞잡이를 했다."
     
    보통 조연배우는 웃기거나 독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빨리 눈도장 찍힌다.

    "제 외모가 평범하다. 딱 캐릭터가 떠오르는 얼굴은 아닌데, 그래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본다. 채윤일 선생께서 제 어릴 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연극계에서 너란 배우의 존재를 알리는데 빨라도 5년 걸릴 것이다, 영역을 넓히면 10년, 그러니 대중이 너를 알려면 얼마나 걸리겠느냐, 배우가 되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배우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라고. 크게 조급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류승룡 유해진 김상호 장현성 등 또래배우들 중에서 영화판에서 먼저 자리 잡은 배우들이 많다.

    "맞다. 그래서 남아있는 1970년생끼리 우리도 그 대열에 끼어보자 그런다.(웃음) 전 연기한지 5년 만에 영화판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빨리 배역을 따내면서 연극은 꾸준히 하고, 영화를 간간히 했는데 돌이켜보면 오랜 시간 무대를 버텨내다 영화로 옮긴 사람들이 빨리 자리를 잡더라."

    "연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초등학교 시절에 판소리를 했는데, 1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다녔다. 부모님께서 너무 깊이 빠질까봐 관두라고 했는데, 희한하게 고등학교 가서 진로를 고민할 때 그때 생각이 나더라. 대학입시에 3번 실패하면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1993년 데뷔하게 된 것이다."
     
    "연기 철학이 있다면?"

    "자연스런 연기를 지향한다. 연기의 지향점은 연기하지 않는 연기다. 어떻게 연기하지 않는 듯 그 인물로 살아있을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 생활이 연기인 송강호 선배는 카메라 밖에서도 너무나 편안해보였다. 저도 조상용이 돼 편안하게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들과 촬영함에 있어서 그 순간에 살아있지 못하겠더라."
     
    "배우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31살에 결혼했는데, 결혼식과 아나키스트 개봉일이 겹쳤다. 그래서 결혼식을 1주 미뤘는데 개봉이 1주 늦춰지면서 결국 또 날이 겹쳤다. 결혼식 피로연 끝내고 개봉 파티에 간 기억이 있다. 당시 제작자가 지금의 그 유명한 이준익 감독이었는데, 중국 상해서 촬영이 끝난 날 7년 만에 내놓는 자식이라며 눈물을 보였던 게 기억에 난다."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배우는?

    "류승룡 씨다. 청룡영화제에서 수상 소감으로 '10여 년 전 이 자리서 축하공연으로 난타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이 참 와 닿았다. 김상호 씨도 몇 년 전 수상소감으로 '제가 배우로서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제야 가장 노릇을 하게 됐다'는 말도 와 닿다.

    저도 그 뒤를 따라가는 배우라서 무대 출신 배우들이 잘되는 게 너무 좋다. 현재 저는 집에서 연말시상식을 시청하는 입장인데, 앞으로 작업 열심히 해 그 무대에 서지 않더라고 그 자리에 앉아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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