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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지 않아, 음악으로 얘기해" 부산판 엘시스테마 출범



부산

    "숨지 않아, 음악으로 얘기해" 부산판 엘시스테마 출범

    위기 청소년 구성된 부산금관학교 본격 수업 시작

    위기 청소년들로 구성된 부산브라스 밴드의 수업 모습.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느껴보지 못한 극한의 슬픔, 또는 기쁨을 선물한다. 또,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한 힘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 음악의 힘이 위기 청소년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 '음'으로 가득 찬 우리의 아지트, 부산 브라스 밴드 출범

    "선생님들이 이제 '도', '미', '솔'을 따로 연주해서 화음을 낼 거예요.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밋밋한 하나의 음이 쌓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화음이 되는지…"

    부산 수영구 민락역 민락인디트레이닝 센터.

    널찍한 스튜디오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앳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의 손에 트럼폰, 트럼펫, 호른 등 금관악기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

    선생님들은 시범으로 C스케일로 화음을 낸다.

    순식간에 공간을 압도하는 큰소리,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 등 다양한 연주를 선보인다.

    아이들은 음 하나하나에 귀를 떼지 못하고, 연주에 빠져든다.

    시원하게 공기를 가르는 금관악기의 명쾌한 소리에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키득거리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악기를 만지작거리며 운지를 짚어본다.

    음악 이론수업과 합주 시범이 끝나면 아이들은 독립된 연습실로 자리를 옮겨 선생님과 1:1 수업을 한다.

    부산지방검찰청(김희관 검사장),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부산지역협의회(회장 신정택), 부산은행(은행장 성세환), 부산문화재단(대표이사 남송우)등이 협력해서 출범한 부산금관학교( Busan Brass Academy, BBA)의 수업 풍경이다.

    공식 입학식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단 2번의 수업이 이뤄졌지만, 학생들은 벌써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

    어린 나이지만 지우고 싶은 과거, 죄책감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 음악을 통해 이루고 싶은 소망도 품게 됐다.

    A(15)군은 "소리가 '빵' 시원스럽게 나는 게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선생님이 성심성의껏 가르쳐 주셔서 기대에 부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즐겁게 배워서 앞으로 꼭 필요한 곳에서 연주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음악으로 '노는법'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함께'하는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B(15)군은 "악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신기했는데, 직접 소리까지 낼 수 있게 돼서 즐겁다. 아직은 '도레미파솔' 소리내는 것만 할 줄 모르지만, 빨리 1기 친구들과 함께 합주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음악의 씨앗을 심어주는 선생님들은 부산 YWCA 브라스 밴드 단원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되려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한다.

    부산 YWCA 브라스 밴드 김충석 대표는 "아이들의 집중력이 대단하다. 하나를 가르치면 두개, 세개는 거뜬히 소화하고 연습도 굉장히 많이 해와서 진도가 빠른편이다. 1기 아이들이 우리나라 금관악기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칠 것"이라며 "이 아이들이 또 2기, 3기 후배들을 가르치고, 함께 연주하면서 음악을 통해 성장하는 선 순환시스템이 자리 잡을 것"고 말했다.

    부산금관학교 1기 학생들이 15일 오후 민락역 연습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 부산판 '엘시스테마', 브라스 밴드로 구성된 까닭?

    부산금관학교(이하 BBA)는 전국 최초로 검찰이 주도적으로 벌이는 부산판 '엘시스테마'라고 할 수 있다.

    엘시스테마는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음악 프로그램.

    총성만 가득 찬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é Antonio Abreu) 박사는 빈민층 청소년 단원 11명을 시작으로 엘시스테마를 시작했다.

    총 대신 악기를 든 아이들은 빠르게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현재 베네수엘라에만 190여 개 센터, 단원 30만명, 세계적인 음악가를 배출하는 음악 교육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부산에서 시작된 BBA가 금관 악기를 선택한 것은 국내에 금관 조기 교육자가 적고, 전문 연주자층이 가장 얇기 때문.

    학생들이 4년간의 교육과정을 마치면 실질적인 대학 입시나 진로 등을 결정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BBA 1기 학생 7명은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해 최종 선발됐다.

    검찰은 일단 지난 9월 동안 위험과,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고 판단되는 후보 청소년들을 상대로 1차 희망조사, 2차 전문 상담 교사를 통한 적성검사, 3차 음악적 소양을 평가하는 오디션을 벌였다.

    앞으로 학생들은 4년간 주 2회 개인레슨, 합주연습 등을 통해 실력을 쌓은 뒤 내년부터는 정기 연주회를 열게 된다.

    ◈ 민,관 협력 출범, 지속적인 지원이 정착 관건

    BBA가 악기, 공간, 교육진 등 삼박자를 갖추게 된 것은 각계각층의 도움이 컸다.

    먼저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부산지역 협의회는 지속적인 운영, 예산 지원을 약속했다.

    부산은행은 연간 2천여만 원 가량 드는 금관악기 구입비를 맡았다.

    또,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작업공간을 마련해 주고 있는 부산문화재단은 최적의 교육장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 부산 YWCA브라스 밴드 단원 8명이 '재능기부'를 통해 선생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면서 비로소 BBA가 공식 출범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오케스트라 꿈나누기' 과정을 만들어 사회 취약층 아이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수년간 실시해 온 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구자범 단장은 악기 선택, 선생님 구성, 커리큘럼, 운영 노하우 등을 전수해주는 등 BBA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 온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산지검은 채양희 기획검사를 BBA 출범을 총괄하도록 일선에 전격 투입해 각계의 MOU를 순조롭게 이끌도록 했다.

    부산지검 김희관 검사장은 "범죄 예방은 검찰의 중요한 업무 분야 중의 하나이다. 특히, 범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청소년들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과 관련해 BBA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라며 "아이들이 음악으로 소통하며 즐거움을 느낄 것으로 기대된다. 몇 년 뒤 BBA에서 프로 연주자가 배출되는 등 저변이 확대되면 취약한 우리나라 금관악기 계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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