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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대부업법'에 메스를 대라



경제 일반

    이상한 '대부업법'에 메스를 대라

    대부업 '악순환의 고리' 끊으려면…

     

    대부업법이 발효된 지 딱 10년. 평가는 썩 좋지 않다. '사채시장 양성화'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불법 사금융 시장은 더 커졌고, 불법추심은 여전해서다. 사채에서 비롯된 사회문제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 해결책을 찾아봤다.

    "이법은 대부업ㆍ대부중개업의 등록ㆍ감독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대부업자와 여신금융기관의 불법적 채권추심행위과 이자율 등을 규제함으로써 대부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금융이용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경제생활 안정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2002년 제정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제1조다. 사채시장을 제도권을 끌어들여 시장을 양성화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세수를 늘리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제대로 실현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불법대부업자는 음성화된 시장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불법추심은 줄었다기보다 좀 더 교묘한 수법들로 대체됐다. 합법적 대형 대부업체는 채권추심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연체율이 높은 채무자를 제도권 안에서 괴롭힌다. 법은 생겼지만 바뀐 게 없다는 얘기다.

    물론 대부업법 제정 후 불법대부업자 중 일부가 등록을 통해 양성화되면서 사채시장 이미지가 많이 변했다. 명칭부터 '사채'가 아닌 '대부'로 바뀌었고, 연예인이 모델로 등장한 TV광고도 나왔다. 코스닥에 상장한 대부업체도 등장했다.

    그러나 대부업법을 통해 사채시장을 양성화한다는 계획은 여전히 '한낱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등록업체보다는 무등록업체가 더 많고, 시장규모 역시 불법 사채시장이 훨씬 커서다. 민주당 최재천 의원실과 민생연대가 금융위원회의 '대부업 실태조사결과'를 재구성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6월말 기준 전체 사채ㆍ대부업 이용자는 약 560만명이었다. 그중 무등록업체 이용자는 약 308만명이었고, 등록업체 이용자는 약 252만명이었다.

    국내 A금융기관이 2010년 정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사채시장 동향보고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전체 사채시장 규모 추정치가 약 18조원이고, 이 중 불법 사채시장 규모가 약 10조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분명한 사실은 등록업체 시장규모보다 무등록업체, 다시 말해 불법사채시장의 규모가 더 크다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업법이 제대로 적용될 리 없다. 실제로 불법사채시장에선 '법정이자율'이 무색할 만큼 고금리의 이자율이 적용된다. 대부업법이 금지한 '불법추심' 역시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현행 대부업법에 따르면 등록비 10만원만 내면 누구나 대부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설기준도, 요건도 따로 없다. 10만원만 있으면 지하골방에도 대부업체를 차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용자의 정보는 업자가 꿰뚫고 있는데, 업자는 자신의 정보는 철저히 가릴 수 있다는 거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불법이든 자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지사장을 세워 놓고 사무실이 아닌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대포통장을 이용해 거래를 하면 법망을 가볍게 피할 수 있다. 기본적인 거래사실관계조차 조작할 수 있어서다. 관리감독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자율이 문제냐 대부업법이 문제냐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대부업을 제대로 양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어떻게'다. 일단 대부업 등록기준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부업계는 등록기준의 전제를 '자본금'으로 하고, 그 기준을 3000만~5000만원으로 설정하자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주장은 다르다. 민생연대 측은 일본처럼 등록기준의 전제를 자본금이 아닌 '자산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통장에 넣었다가 뺄 수 있는 자본금보다는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자산금을 등록의 전제로 삼아야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등록기준 역시 '자산금 3억~5억원(단계적 확대)'으로 업계 주장보다 훨씬 높다. 등록기준을 높게 설정해 더 이상의 대부업 진입을 막고, 제도권에 들어와 있는 대부업체는 저축은행과 같은 형태로 나아가도록 유도하자는 취지다. 송 사무처장은 "대부업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금융업을 하려면 개별법에 따라 인허가를 받아야 했다"며 "대부업자들은 대부업법을 통해 등록만 하고 시장에 진입해 각종 사회문제들만 양산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서울시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관리감독 인력조차 없다"며 "대부업 시장의 대출~회수~연체~추징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실사가 이뤄져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주장도 있다. 대부업의 법정이자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재선 한국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이자율이 내려갈 때마다 등록업체는 줄어들었다"며 "대부업 이자율을 떨어뜨리면 시장이 음성화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통계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2002년 10월 전까지 연 66%였던 대부업 이자율은 2007년 10월 49%로, 2010년 7월엔 44%로, 2011년 6월 39%(현행)로 조정됐다. 반면 2009년 9월 1만5723개였던 등록대부업체 수는 이자율 하향조정이 본격화한 2010년 이후 꾸준히 줄더니 지금은 1만여개밖에 남지 않았다. 법정이자율이 하락하면서 일부 등록대부업체들이 지하시장으로 숨어들어갔다는 얘기다.

    이재선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대부업의 장점은 급전이 필요할 때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장점이 사라지고 있다. 법정이자율이 떨어지면서 대부업체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여건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대부업체에 '돈'이 마르는데, 누가 돈을 빌려주겠는가. 실제로 등록대부업체의 대출승인율은 고작 20%에 불과하다. 등록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이들은 어디로 가겠는가. 십중팔구 불법대부업체다. 그런데도 등록대부업체의 법정이자율을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축은행이나 할부금융사의 이자율이 30% 내외인 상황에서 어쩌란 말인가." 등록대부업체의 법정이자율을 높여야 수익이 나고, 그래야 저신용ㆍ저소득자를 위한 대출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는 얘기다.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모순矛盾도 있다. 사금융 시장은 저소득ㆍ저신용자가 돈을 빌릴 수 있는 마지막 '창구'다. 신용이 낮기 때문에 원리금을 갚지 못할 공산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대부업체를 늘리기 위해 법정이자율을 높이는 건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송 사무처장은 "정상적으로 갚을 능력이 안 되면 빌려주지 않는 게 대출"이라며 "빚이 있다면 좀 느리더라도 갚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나서야지 시장에만 맡겨 놓을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대부업 이용자의 대출금 용도를 보면 가계생활자금이 전체 대출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다음이 기존 대출금 상환이다. 팍팍한 살림살이 때문에 대출을 받았다가 원리금을 갚기 위해 대출을 또다시 받는 악순환 구조다.

    송 처장은 "대출과 상환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다"며 "서둘러 채무자들을 구제할 효과적인 채무조정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정부는 지금껏 연체관리시장만 조성해 서민의 자립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공적자금을 투입함과 동시에 사회보장시스템을 구축해 채무자들이 악성채무자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등록대부업체에게 급전을 빌렸다가 돈을 갚지 못하면 '채무조정프로그램'이 즉시 가동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대출금을 갚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길 뿐만 아니라 불법추심도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사금융 시장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은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별로 없다. 민간 대부업체에만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 대부업법이라는 모호한 법규정을 만들어 서민을 사금융 시장에 몰아넣은 정부가 이젠 나서야 한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든 고리대 업자가 환영받았던 적은 없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 "대부업 양성화 득보단 실이 많다"

     

    ▲ 대부업 시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
    "대부업 시장은 한쪽만 우월적 입장을 갖는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대부업법에는 채권자의 권익만 있지 채무자의 재산이나 권리는 배려하지 않는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는 논리만 적용된다. 여기에 살인적인 이자까지 더해져 문제가 되는 거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채무는 갚을 의도가 있어도 갚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 당연히 채무자의 경제적 자립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채무의 늪에 빠지게 되는 거다. 이런 사회는 올바르지 않다. 채무자가 채무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채권자도 좋고, 채무자도 좋아질 수 있다.'

    ▲ 대부업 시장을 양성화하면 세수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럼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을텐데.
    "제로섬 게임이다. 대부업을 양성화하면 세수가 늘어난다. 실제로 등록대부업체로부터 걷을 수 있는 세금이 연간 1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업 시장을 드나드는 저소득ㆍ저신용자가 늘어나면 좋을 게 없지 않은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부업 시장을 양성화하고, 여기에 애먼 서민을 끌어들일 필요가 대체 무엇인가. 악성 채무자가 많아지면 국가 차원의 사회적 비용은 더 늘어난다. 대부업 양성화를 통한 득보다 실이 더 크다. 도대체 어떤 국가가 국민이 돈을 더 빌려 쓰도록 만들어서 세수와 소비를 늘리고, 국민은 빚쟁이로 만드는 정책을 내는가. 이런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 대부업 등록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현행법은 10만원의 등록비만 있으면 대부업을 할 수 있다. 누구든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거다. 대부업법의 취지는 기존 사채시장을 양성화하겠다는 것이지 누구든 사채시장에 뛰어들라는 게 아니다. 대부업법의 취지를 달성하려면 조건이 되는 사람만 대부업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과도한 추심도 막을 수 있다. 특히 자금여력을 살펴볼 수 있도록 자본금이 아닌 자산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강화한 기준에 부합하는 대부업체에 대해선 철저히 관리감독을 해서 저축은행과 비슷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반대로 진입장벽을 넘지 못한 불법대부업체는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 등록 조건을 강화하는 것은 대부업 시장을 없애는 첫 단추다."

    ▲ 대부업체들은 연 39%의 이자율이 저축은행이나 할부금융사의 이자율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큰 차이가 없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게 대부업 이자율을 올리거나 고정시켜야 하는 근거일 순 없다. 대부업체 수익을 담보해주기 위해 국민을 사지死地로 내몬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수익률이 맞지 않으면 이자율을 탓할 게 아니라 사업을 접어야 한다."

    ▲ 대부업체가 줄어들면 돈을 빌릴 곳이 없는 저소득ㆍ저신용자가 늘어날 지도 모른다.
    "갚지 못할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 먼저 대부업을 없애고, 국가가 대부업 이용자의 채무를 관리해야 한다. 채무조정프로그램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더불어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병원비가 없어서 대출을 받아야 하거나 월세를 내지 못해 대출을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원래 이런 것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부업법을 만들면서 시장으로 떠넘긴 것이다. 정부가 제 역할을 발휘해야 할 때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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