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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시 랜드마크 '파리 에펠탑' '베이징 자금성'…서울 아파트?



책/학술

    각 도시 랜드마크 '파리 에펠탑' '베이징 자금성'…서울 아파트?

    [신간 소개] 아파트 -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

     

    얼마 전 공개된 전 세계 대표 관광 도시들의 상징적인 건물 스탬프는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밴, 베이징의 자금성,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아파트를 꼽았다.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아파트가 꼽힌 게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인 방문객 역시 서울에 대한 인상 중 하나로 아파트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보이는 것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니 그럴법도 하다.

    <먼 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 교수도 대한민국 편에서 ‘아파트’를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라고 꼽기도 했다.

    이처럼 아파트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침투해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아파트 문화. 그런데 전 국민의 60퍼센트가 사는 아파트(단지)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데에 숨은 논리가 있다면?

    박철수 교수의 신간 <아파트>는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국의 아파트(단지)가 어떻게 생겨나 왜 이런 현상들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는 보고서이다.

    1962년 준공된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에 세워진 아파트들은 서민을 위한 집합주거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산층 핵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도시 주택 유형으로 자리매김하더니, 1976년에는 '아파트 지구로 지정된 곳에는 다른 유형의 주택을 지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제도까지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마포아파트에서 강남의 아파트단지까지 아파트는 시민들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성장해온 것이 아니었다. 공적 투입을 최소화하려는 정부, 특혜나 다름없는 제도를 등에 업은 건설회사, 새로운 중산층의 욕망이 함께 빚어낸 산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대한 저자의 문제 제기이다.

     

    아파트단지에는 정부가 공적 투입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법률이라는 절대적인 공권력을 행사해 공동 거주에 필요한 단지 내 부대시설과 편의시설 일체를 입주자의 부담으로 확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의 거주자가 집 앞 도로의 가로등이 고장났다고 해서 자비로 전구를 갈아 끼우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아파트단지만은 관리비로 이 모두를 해결해야 한다. 결국 공공의 재원으로 담당해야 할 도시기반시설 확보를 사적비용으로 해결하도록 전가한 것이 아파트단지 개발의 핵심이라는 이야기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단지 내 통과도로를 막고 담장을 치는 촌극이 빚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공공이 관리해야 할 모든 것들을 아파트 입주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가 한국 도시와 주거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아파트의 대안으로 손꼽히는 타운하우스와 블록형 단독주택 등도 공간구조라는 측면에서는 ‘단지’이기에 결코 올바를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경제적 효율과 주택 공급의 확대에만 주목한 아파트단지 개발은 대규모 단지 만들기와 전용공간의 무차별적인 확장이라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자극한 결과라는 점에서, 결국 사익의 확대와 공익의 무력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한국의 아파트단지를 관통하는 쟁점을 공공공간의 질적·양적 부족과 사적 공간의 기형적 과잉으로 정리한다. 그래서 이 책을 꿰뚫는 부제가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저자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주거건축과 문화’ ‘도시공간과 사회 환경’ 등의 주제를 엮어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주택연구소와 공동주택연구회에서의 연구와 활동 덕에 ‘아파트 전문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파트가 더 이상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익숙해서 지나쳐 버렸거나, 혹은 지금까지 알지 못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한국 아파트단지의 민낯을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아파트를 정확히 아는 것이야말로 아파트 이후의 주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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