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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이에게

     

    숙취의 느지막한 아침, 새하얀 수세식 양변기 위, 봉두난발의 살쾡이 한 마리, 쾡한 눈망울을 하고 멀뚱히 앉아 있다
    양변기 뒤쪽
    비눗물 자욱 너저분한 커다란 거울
    숙취로 더럽혀진
    어젯밤 죄…… 비추고 있다
    새로 지은 원룸 아파트 안팎, 온통 캄캄하다 환하게 빛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아흐, 이 사람 각자 선생이라니!

    ―「살쾡이 한 마리」중에서 (『첫눈 아침』)

    인간이 지니고 있는 다른 생명체와 변별되는 특징은 수없이 많습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고쳐나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고쳐나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까닭은 단순합니다. 위에서 예시한 저의 졸시 「살쾡이 한 마리」가 바로 일상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의 서정적 주인공은 '살쾡이 한 마리'입니다. '살쾡이 한 마리'가 화자인 시인 자신을 객관화한 알레고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화자인 시인? 화자인 시인은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 이은봉 자신입니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나 자신이 꾸리고 있는 삶의 내용, 반성과 성찰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기가 좀 쑥스럽고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내 얘기를 남 애기처럼 하는 것이겠지요.

    이 시에서 '살쾡이 한 마리'는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 못 합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먹이를 따라 떠돌아다니며 살 수밖에 없는 후기자본주의 시대, 이른바 노마드 시대에는 너무도 흔한 것이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저녁이 오고, 밤이 오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달래기 일쑤입니다.

    술을 마실 때는, 술에 취했을 때는 좋지요. 하지만 술에 취해 숙소인 원룸 아파트의 침대에 함부로 부려져 있다가 아침에 깨었을 때는 참담해지지요. "숙취의 느지막한 아침, 새하얀 수세식 양변기 위"에 "쾡한 눈망울을 하고 멀뚱히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영락없이 "봉두난발의 살쾡이 한 마리"이지요.

    이런 내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쓴 것이 이 시입니다. 아무리 외로워도 다시는 술 따위로 외로움을 달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말이지요. 술은 잠시 우리의 영혼을 마취시킬 뿐이지요.

    이은봉 올림

    이은봉
    1953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했고, 1992년 숭실대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삶의 문학』 제5집에 「시와 상실의식 혹은 근대화」를 발표하면서 평론가로 데뷔했고, 1984년 '창작과비평'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에 「좋은 세상」 등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1985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에 참여해 연구조사분과 간사 등을 맡았고, 현재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원문은 책읽는 사회 문화재단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 (http://letter.for-munhak.or.kr)에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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