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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향기 깃든 사람사는 집으로…



책/학술

    삶 향기 깃든 사람사는 집으로…

    소통없는 현대 건축 꼬집어

     

    ⊙다시, 관계의 집으로/최우용/궁리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에세이에서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재테크 전문가를 통해 도심의 한 원룸을 소개 받았는데 당시 값이 3억 엔, 우리 돈으로 34억 원이었다고 한다. 그 전문가가 하루키에게 말했다.

    "이 원룸 사 두면 앉아서 돈 버는 것"이라고. 하루키는 그 집을 사지 않았다. "사는 집이 아닌, 돈 벌기 위한 집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집의 값어치는 1년도 안 돼 5억 엔 이상으로 뛰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전한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러한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이다.

    어느 순간 '사람 사는 집'이 '사람 잡는 집'으로 변질됐다.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면서 본래 목적을 상실한 채 대다수 서민의 꿈을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으로 한정지어 버린 탓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의식주의 권리 가운데 하나가,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좇아야 할 이상향이 돼 버린 셈이다.

    신간 '다시, 관계의 집으로'가 펼쳐놓는 이야기는 어쩌면 이러한 현실의 근원을 캐는 작업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지은이는 여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뚝함을 미덕으로 삼는 많은 현대 건축은 근대 건축의 또 다른 말이다. 우리 삶의 물리적 조건을 장악한 존재의 집들은 자기 완결적이기 위해 주변과의 관계를 끊어내고 그 존재의 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관계를 거세당한 이 자기 완결은 대부분 헛것이었다. 저 우뚝하고 거대한 건축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되는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근대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과 관성적 설계방법론에 이끌어진 공간은 관계를 절단당한 채 자폐적으로 닫혀 있다. (15쪽)'

    이 세상에 오롯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집들은 스스로 홀로 굳건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집이 놓일 동네의 맥락을 살피지 않거나 환경을 장식품쯤으로 여기는 집들 말이다. 자꾸만 우뚝해지고 비대해지며 자폐적으로 변하는 것이 이 집들의 특징이란다.

    '도시의 랜드마크는 그 스스로 랜드마크라고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검증을 통과하여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줘야 랜드마크가 되는 것이다. (중략) 그런데 명확하고도 단순한 이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다. 랜드마크를 조급스럽게 갈망하는 이들은 주로 가시적 특이성에 달려든다. (중략) 그래서 일반적으로 랜드마크에 집착하는 이들의 행동은 다급하고 또 경솔하며 무례하다. (186, 187쪽)'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뒤 건축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이 책의 지은이는 틈나는 대로 일산 밤가시초가, 제주 테쉬폰 주택, 경산 상엿집 등을 둘러봤다. 그는 주로 변방에 자리해 잊히거나 사라진 건축물들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주목했다. 이러한 집들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과의 관계 맺기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인간 삶의 깊이를 받아들이고, 미래세대에 대한 구속력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론이다.

    '제주의 테쉬폰 주택에는 아치가 되고 싶은 벽돌의 의지에 앞선 것이 있었다. 가난한 제주 중산간에 넘치는 재료는 억새였으며 벽돌은 비싼 재료였다. 벽안의 신부에게는 아치가 되고 싶은 벽돌의 의지보다 제주의 가난한 현실이 당면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것이 테쉬폰 주택의 아치가 벽돌이 아닌 시멘트로 만들어진 이유일 것이다. 재료를 존중하는 방식은 각각이다. 다만, 물성을 아는 현명함과 물성을 모르고 또 무시하는 무지가 다를 뿐이다. (52, 53쪽)'

    이들 관계의 집은 지역과 기후가 다르고, 인종과 문화가 다르며,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아주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제 다시 사람 사는 집, 공생의 집에 대해 보자고 제안하는 책 '다시, 관계의 집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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