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함께 그리고 더불어…어느 목사의 ''희망 상담''



인물

    함께 그리고 더불어…어느 목사의 ''희망 상담''

    [노컷사람] 파산면책 무료 상담 김철호 목사...''''인간답게 살 권리 알려주는 것''''

    김철호 전화

     

    45살. 가진 건 초등학교 졸업장 뿐. 고교 입학과 졸업 검정고시에 이어 99학번으로 신학대에 입학했다. 김철호 목사는 비로소 어릴 적 아명이었던 ''''김 목사''''가 됐다.

    김 목사는 어릴 적 꿈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사회 정의와 평등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꿈.

    사회 정의와 평등은 무엇에서 시작될까. 김 목사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파산과 면책 무료 상담을 시작했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알려주고 있는 김 목사를 <노컷 사람="">이 만나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상담소인 ''''민생상담네트워크 새벽''''에서 진행됐다.

    인터뷰가 시작될 때 즈음, 상담소에 전화가 걸려왔다. ''''파산면책 신청인의 경우 세간살이는 경매 중지 신청이 가능해요. 네, 네, 그렇게 하면 큰 문제는 없을거예요.''''

    자리로 돌아와 앉자, 이번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남편에게 서류철을 건넨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부인분 파산은 아직 안됐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부부가 돌아간 뒤에야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될 수 있었다.

    김철호 목사(58)의 집은 ''''민생상담네트워크 새벽'''' 사무실이다. 김 목사의 교회는 사무실 한켠의 교육장이다. ''''새벽''''은 그렇게 항상 열려있다.

    파산 면책 무료 상담을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빈곤층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되묻는다. ''''빈곤층의 공통점은 바로 채무예요. IMF와 구조조정 여파로 중산층이 빈곤층이 됐잖아요. 열심히 번 돈은 모두 빚 갚는데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죠. 채무자, 파산 면책에 대한 비난이 있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은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알려주는 거예요.''''

    김 목사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어릴 적 아명이 ''''김 목사''''일 정도로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가난 탓에 중학교를 중퇴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어요. 정의와 평등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나라. 주변을 둘러봤어요. 많은 사람들이 빚에 허덕이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들여다보니, 이 빚이라는 것이 거대독점자본의 횡포를 비롯해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런 사회는 정의롭지도 또 평등하지도 않아요. 사람들을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정의와 평등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국가에서 국민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했어요. 하지만 너무 복잡한 게 흠이었지요. 그래서 이를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주고 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료 상담을 시작했어요.''''

    사실, 김 목사의 무료 상담은 갑자기 시작된 일은 아니다.

    90년, 당시 ''''김 씨''''는 충북 청주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도시 일용노동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인력시장에서조차 일감을 받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만들어낸 공동체로 8년 동안 이어졌다.

    이 후 99년, ''''김 씨''''는 신학대에 진학했다. 45살. 중학교 중퇴가 최종 학력이었던 김 씨는 검정고시를 치렀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김 목사''''는 빈민 운동에 뛰어들었고 2006년 파산면책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 7년여,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도 많을 터. 그 중 하나만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김 목사는 지난 2009년 찾아온 김창수(가명.40대 초반)씨를 떠올렸다.

    김철호 대화

     

    김 씨는 중학교 시절 재혼한 어머니가 죽자,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았다. 열심히 살아낸 덕에 30대 중반에는 자동차 도색 공장의 사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은 건 빚 뿐.

    김 씨는 죽기로 결심했다. ''''죽으러 가는 길'''' 김 씨는 마침 대전역에 설치돼있던 상담부스를 찾았다. 상담을 거듭한 뒤에 빚이 탕감됐고, 수급자로 지정돼 병원치료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내담자 모임 ''''새마당''''을 찾는다.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이 미래의 희망을 모색하기 위해 ''''새벽''''이 운영하는 내담자 모임에서 김 씨는 희망을 찾고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으로 흘러갔다.

    김 목사는 ''''빚이 탕감됐다고 해서 상황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건 아니예요. 비정규직이고 하루노동자인 현실에는 큰 변화가 없어요. 이들에게 ''''미래''''를 줘야 해요. 협동조합을 통한 밥벌이 공동체 창업을 고민하고 있어요.''''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에 대한 말도 이어졌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 단체예요. 인.허가를 받으면 각종 사업이 가능한데, 예를 들면 소액 대출이 가능해져요. 생계가 급한 채무자들에게 급한대로 생활비를 대출해 줄 수 있어요. 물론 현행법상 수익이 남으면 사회에 환원해야 하고요. 이 밖에도 빚어 허덕이고 빈곤층으로 내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담아낼 수 있어요.''''

    50대 후반 김 목사는 독신이다. 이유를 물었다.

    ''''21살 때 가정을 갖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가정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결정한 거였어요. 40년 가까이 그 약속을 지키고 있는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더불어 사는 사회잖아요. 저도 이제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살아야죠.''''

    자신의 삶을 관통해 온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에 편입(?)하려는 김 목사의 입가에 멋쩍은 웃음이 번졌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