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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이 ''특별한 이유''… 그리고 잊혀진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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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이 ''특별한 이유''… 그리고 잊혀진 사실들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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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주한 미군들이 도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시민을 상대로 난동을 부려 경찰이 실탄까지 발사하며 심야의 추격전을 벌였고 공공장소에서의 성추행 사건까지 벌어졌다. 지구촌에서 주둔 미군의 범죄는 어느 나라나 골칫거리이고 솜방망이 처벌이다. 어디나 마찬가지라지만 주둔미군의 역사적 배경을 따지자면 같다고만 여길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미군의 주둔 배경이 독일·일본 등 다른 나라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독일·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 국가이자 패전국이다. 필리핀은 미국이 식민지(미국과 스페인의 영토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함에 따라 쿠바·푸에르토리코·괌 등과 함께 스페인령에서 미국령으로 넘겨졌다)로 삼자 미국에게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패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점령군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니 독립을 위해 ''미국의 적국인'' 일본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인 우리나라는 미군 주둔의 배경이 확연히 다른 것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미군 범죄는 ''일본경찰 살인 방조''

    1945년 9월8일, 미군은 인천항으로 상륙하면서 상륙작전에 방해가 될까봐 일본 경찰을 동원해 주민들의 외출과 인천항 접근을 통제했다. 그래도 일부 시민들은 미군을 환영한다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인천항으로 모였다. 이때 경비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총격을 받아 2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부상당했다.

    다음날인 9월 9일 상륙부대인 미군 7사단은 보병연대 하나만 인천에 남겨놓고 서울로 향했다.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 급해서였다. 그리고 오후 4시 일본군은 미군에 공식 항복했고, 조선총독부 건물에는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걸렸다. 이 때 사망자의 장례는 인천시민장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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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이 끝난 뒤 유족들은 인천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일본경찰을 미군정에 고소했지만 군사재판에서 미군은 ''일본 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넘은 인천시민들에 총격을 가한 것은 정당했다''고 판정했다. 이것이 주한미군에 의해 우리 국민이 죽고 다친 최초의 사건이다. 직접적인 위해는 아니었지만 죄목을 따지자면 ''살인 방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치로 봐도 미국은 우리를 우방국으로 대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2월, 미국은 얄타회담에서 소련에게 함께 일본을 무너뜨리자고 요청했다. 그러자 소련은 냉큼 받아들여 8월에 만주로 진격한 뒤 이틀 만에 한반도에 들어서 영토확장을 꾀했다. 한반도를 빼앗기겠다 싶어 다급해진 미국은 서둘러 한반도 분할 통치를 결정(미국 육군부 정책과장이던 딘 러스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발간한 낡은 한반도 지도 한 장을 펴서 수도 서울을 남쪽에 두고 한반도 북쪽은 소련에게 주고, 서울이 있는 남쪽은 미국이 차지하면 된다며 3.8선을 별 고민 없이 그어버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했다.

    미국은 사전에 일본총독부에 밀사를 보내 미군이 들어갈 때까지 당분간 지휘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을 명령했고, 일본은 조선 건국준비위원회에 모든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우리 국민에 대한 약속을 취소했다. 그 후 등장한 것이 맥아더 포고문 제 1호이다.

    "일본의 항복문서 내용에 의해, 나의 지휘 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 오랫동안의 노예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인민은 점령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들의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 것을 새로이 확신하여야 한다.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인 나에게 부여된 권한에 의하여 나는 이에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과 조선주민에 대하여 군사적 관리를 하고자 다음과 같은 점령조건을 발표한다. 제1조 -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와 조선인민에 대한 통치의 전 권한은 당분간 나의 권한 하에서 시행한다."

    이처럼 미군 범죄는 점령군으로 시작된 불평등한 한미관계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미군들의 점령군처럼 구는 잘못된 인식과 태도, 강대국의 눈치를 살피는 한국 정부라는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사회문제이다.

    ◇ 난 미군, 언제나 소중하니까...

    우리나라에 신병이 인도된 미군은 기결의 경우 남자는 천안소년교도소에, 여자는 천안구치소에 집결 수용된다. 미결은 전국 18개 교정시설에 수용하고 있다. 미군은 SOFA에 따라 ''최소한도의 수준''을 갖춘 교도소에 가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 72평방피트(약 2.02평)의 독방에 미군당국으로부터 직접 공급받은 음식물로 스스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 감방에는 냉장고, 스토브 등을 구비하고 작은 식당을 별도로 마련하거나 미군 수용자들이 그들의 거실 내 테이블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 합동위원회 합의의견 제13호).

    솜방망이 처벌에 철저히 인권을 존중하는 이런 대우를 받으니 범죄 후 처벌을 두려워할 리 없고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흔히 주한미군 지원자의 수준이나 자질이 문제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그보다는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군사주의와 인종차별주의, 점령군으로 착각하는데서 오는 우월감, 그리고 불평등한 대미관계 등 넓은 시각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다른 원인으로 미군이 범죄 전과나 정신장애가 있는 문제 신병들을 무분별하게 뽑은 것이 이유라는 지적이 있다. 2008년 미국 하원 정부개혁위원회에서 공개된 미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강도나 폭행 등 중범죄 전과가 있는 미군 신병이 2006년 249명(미 육군 기준)에서 2007년 511명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병력이 부족하자 무분별하게 신병을 모집했기 때문이라고 해석되는 부분이다.

    ㄷㄷ

     

    또 이라크 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에 참가하고 귀국한 미군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며 범죄에 쉽게 빠진다는 보고도 있었다. 알코올 남용 건수는 2배, 가정폭력은 3배로 늘었고 강간 사건은 3.8배 증가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BestNocut_R]한국에 파병된 미군 중에도 2007년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성폭행 미수범, 군산 공군기지 주변 택시 절도 미수범 등은 참전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전쟁 트라우마가 주한미군 범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미군 측에 주한미군으로 복무하고 있는 군인 들 중 이라크.아프간 전쟁 경험자들이 얼마나 있으며,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진단된 군인들에 대한 미군 당국의 대책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없다.

    대답도 없고 대책도 없다. 9.11 테러 직후에는 미군의 안전을 위해 야간통행금지조치를 취했다. 이때 미군 범죄는 급감했다. 한국인도 안전을 되찾은 것이다.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된 이후 미군범죄는 다시 늘고 있다. 이러니 일단 미군 측이 뭔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인식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

    그 다음은 주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이다. 우리 경찰의 수사와 형사재판권은 미군과 군속의 범죄에 관해 지극히 제한적이다. 미군 범죄가 문제가 되면 그 때 그 때 SOFA 형사재판권 운영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합의사항을 만들어 붙이고 있지만 합의사항은 강제력이 없어 늘 미봉책이다. SOFA의 본문 개정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둔군 범죄에 대해 대답도 대책도 없이 이대로 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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