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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다리를 잘라야 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만.."



사건/사고

    [르포] "다리를 잘라야 하나 하는 생각에 눈물만.."

    [구미 불산가스 누출 현장을 가다 ②] 감춰진 진실



    지난달 27일 순도 99.8%의 불산가스가 바람을 타고 공장 옆 마을로 흘러들었다. 20톤에 달하는 양이었다. 사고 이후 5명이 사망하고 공장도 잠정 폐쇄됐지만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연기를 마신 소방관, 경찰과 마을 주민들은 사건 발생 열흘이 넘도록 원인 모를 발진과 두통,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의 대처는 안이하다. 하루 만에 주민 대피령을 해제해놓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CBS는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이후 공장과 그 주변 마을에 드리워진 '재앙의 그림자'와 사지(死地)에 방치된 주민들, 공장 근로자들의 실태를 심층 취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재앙이 시작됐다
    2. 감춰진 진실
    3. 사지(死地)에서의 하루하루
    4. 예견된 인재…대안은?
    주민

     

    구미 불산 가스 누출 이후 공장 주변 마을 주민들이 눈 따가움과 호흡 곤란 등을 호소하고 있는 가운데 가스를 마신 주민이 다리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CBS 취재결과 확인됐다.

    불산이 기관지나 폐 뿐만 아니라 뼈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사례여서 2차 피해확산에 대한 파장이 예상된다. 구미 봉산리 마을 주민 A(56)씨가 다리를 절기 시작한 건 지난달 27일 사고 이후부터다.

    당시 멜론 밭에서 작업을 하던 A 씨는 100m 떨어진 공장에서 넘어오는 불산 연기를 직격으로 맞았다.

    "불이 나가 연기가 오는 줄 알았는데 매캐한 연기라, 이거 불이 아이다 해서 이카고 있는데 이장님이 대피하라고 방송 해서 나왔지."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 20분 동안 더듬더듬 밭을 벗어나 마을 주민들이 있는 들판으로 합류한 A 씨는 이후 심한 기관지염으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을 나오면서부터였다. 6년 전 수술한 왼쪽 다리에 갑자기 이상이 생긴 것. 무릎이 점점 아파오더니 급기야는 절뚝거리며 걸어야 했다.

    다리 통증이 심해져 지난 5일 병원을 찾은 A 씨는 결국 "염증이 심하고 연골이 손상돼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왜이카나 하데요. 내 무서워서 불산 까스 마셨다는 얘기는 몬했어요. 의사는 자기가 수술 잘 몬한줄 알고 '나는 수술을 잘 했는데 와이래졌노' 하면서 '할매 수술하게 빨리 병원 오이소' 이카던데. 까스 마셨다고 얘기 해야겠지요?" 평소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1km 떨어진 밭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닐 정도로 건강했던 A 씨는 "불산 가스가 다리를 망가뜨린 것 같다"고 말했다.

     

    A 씨는 "불산 가스가 뼈에도 침투한다니 겁나 죽겠다"며 "이거 내가 다리를 잘라야 되나 생각에 어제는 잠도 안 오고 눈물이 나서 미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문가들은 불산 가스를 코나 입으로 흡입했을 때 호흡기 계통과 폐에 이상이 생기는 것 뿐만 아니라 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하대학교 산업의학과 임종한 교수는 "불산 가스 흡입이 뼈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혈액으로 들어간 불산 가스가 혈액 순환을 통해 뼈에 들어가면 칼슘과 잔응해서 뼈 조직의 손상을 가져온다는 것.

    임 교수는 "가스를 마신 뒤 연골 등 뼈에 이상을 보인 A 씨의 증상이 불산 가스 흡입과 충분히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며 "기존에 있었던 뼈 관련 질환이 가스를 마신 후 악화된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기체 상태의 불산이 하천 등에 흘러들어갔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2차, 3차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임 교수는 "불산에 오염된 물을 정기적으로 마셨을 경우 뼈에 이상이 생기는 사례는 굉장히 많다"며 "이번 가스 누출 사고로 인한 2차, 3차 피해도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연세대학교가 2006년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제출한 <화학물질 노출기준="" 제="" ·="" 개정="" 연구-불화수소="">에 따르면 사람이 불화수소 가스를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심한 저칼슘혈증을 야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논문은 또 고농도 불산이 식수나 대기중에 공급된다면 치아 부식증과 반점을 야기할 수 있으며 뼈와 신경계의 장기 손상을 가져오는 불소증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환경부장관 "불산 잘만 쓰면 괜찮아" 안일한 인식

    공장

     

    불산 가스 피해가 점차 확대되면서 정부는 8일 구미 봉산리, 임천리 등 불산가스 누출 현장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했다.

    또 주민들의 건강 피해와 노출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주민건강영향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오는 2013년 7월까지 건강영향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사고 이후 12일 동안 환경부 등 관계당국이 보여준 안일한 인식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기는 커녕 불산의 위험성을 축소하는 등 안일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지난 6일 토요일 봉산리 마을을 방문한 유영숙 환경부장관은 그대로 말라버린 논과 시커멓게 변한 멜론, 포도를 보며 "농작물, 가축들 피해가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BestNocut_R]

    그러나 환경부의 늑장 대응에 대한 지적에 유 장관은 "불산이 안전하게만 다루면 크게 위험한 물질은 아니다"면서 "전쟁터에서는 매뉴얼대로 따르지 못하듯이 당시 현장 관계자들이 그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정보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열흘만에 현장을 찾은 이유에 대해서는 굳은 표정으로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녹색연합 이재혁 운영위원장은 "장관이든 공무원이든 무조건 괜찮다고만 하는데 그냥 봐도 괜찮지 않은 상황"이라며 "눈 가리고 아웅하지 말라"고 질타했다.

    이 위원장은 불산이 하천으로 흘러들었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3차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하천의 경우 비가 오면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반경 2km 내 오염 물질이 비가 왔을 때 주변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향후 어떤 일이 있을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상제작]= 노컷TV 민구홍 기자(www.nocutnews.co.kr/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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