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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취직도 안되는데 경제의 민주화를 논해?"



경제 일반

    20대 "취직도 안되는데 경제의 민주화를 논해?"

    [현장에서 듣다 ''서민들이 바라는 경제민주화'' ①]

    연말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정치권의 화두다.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균형 있는 경제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와 경제주체 간의 조화 등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지를 놓고 유력 대선주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정책 대결이 벌써부터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 이뤄지는 경제민주화 논의에서 서민은 실종됐다. 재벌개혁, 재벌해체,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오너 처벌강화 등 대기업 집단만 경제민주화의 대상 혹은 담론의 주체로 등장할 뿐이다.

    CBS는 20대부터 50대까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인력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 세대별 서민들의 바람을 직접 듣고 그 목소리들을 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20대: "취직도 안되는데 경제의 민주화를 논해?"
    ② 30대: "비정규직이 오를 계단만이라도 허락해주세요"
    ③ 40대: "대기업 프랜차이즈, 아니면 죽을 수밖에"
    ④ 50대: "인생 2막은 없다. 실패한 1막만 있을 뿐"
    ⑤ "경제를 민주화하라"…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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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유명 사립대 4학년인 이지원(가명.남.27) 씨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 40분이다. 종로 모 어학원에서 오전 7시부터 시작하는 토익 수업을 들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경제학을 전공한 지원 씨는 공연기획이나 문화산업 분야에서 일하고 싶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취업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900점을 넘는 토익 점수와 한자, 컴퓨터 자격증 등을 갖춰야 한다.

    토익 점수가 근로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토익 점수 기재란이 없는 지원서를 본 적이 없는 데다, ''기업 입장에서는 토익 점수가 성실성의 척도''라는 친구들의 취업후기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원 씨는 올 가을 취업전선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남아야 한다. 대구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영세 여행사는 벌이가 전혀 없어 세금도 내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가 명함제작 제지공장에 다니며 벌어오는 돈이 생계의 전부다. 어머니는 지난해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제 어머니가 벌어오는 돈으로 하숙비를 충당하는 것마저 죄스럽다. 고향인 대구에 가능하면 가고싶지 않다. 지난 6월 예비군 훈련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와 올해는 딱 한번 다녀왔을 뿐이다.

    집에 빚이 2억 넘게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지원 씨는 취업에 악착같이 매달릴 거라고 말한다. 지원 씨는 한학기 평균 350만원 하는 등록금을 낼 수 없어 학교에 면학장학금을 신청했고 다행히 두 학기 연속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학기가 걱정이다. 400만원에 가까운 등록금 고지서를 어떻게 내밀지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경제민주화요? 누구나 남들과 다르지 않게 잘 살자는 구호인 거 같은데 저와는 상관 없는 말 같아요, 제가 원하는 건 취직 단 하나에요.''''

    ◈ ''''의지 있는 사람들한테 기회를 줘야지요!''''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경제민주화 담론을 꺼내자마자 지원 씨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20대가 바라보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의지가 있는 사람들한테 기회를 주는 거지요,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취업 전선에서 밀리지 않을까 그게 먼저 걱정돼요, 꿈은 사치에요.''''

    지원 씨는 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가끔은 주어진 것에 많이 순응하게 된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뭘 바라서 될 것도 아닌데 괜한 기대감만 들면 나중에 힘들잖아요.''''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바꿔 물었다.

    강한 불신감이 돌아왔다.

    ''''반값등록금 얘기는 온데 간데 없어졌어요, 말만 내뱉고 대책은 마련하지 않는 것들에 회의감이 들어요, 경제민주화요? (정치인들이) 잘 알아서 하시겠죠, 방법은 모르겠지만 일자리 창출이 저희에게는 경제민주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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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자금 너도 2000만원? 나도 그래! 괜찮아''''

    서울에 있는 모 대학 공대 4학년 졸업반인 이승훈(가명.남.26) 씨는 빚이 벌써 2,000만원이 넘는다. 평균 480만원인 한 학기 등록금을 5학기나 받았기 때문이다.

    ''''너도 2,000만원 나도 2,000만원, 너도 있고 나도 있고하니 부담 없어요, 다들 그 정도는 있으니까요 하하.''''

    승훈 씨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다. 어머니는 작은 옷 가게를 운영하지만 임용고시를 준비중인 2년 터울 누나와 자신을 뒷바라지하기에는 벅차다. 돈도 많이 드는 공대에 가서 부모님께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학자금으로 버텼기에 취업이 안되면 끝장이라고 말한다.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가 정치권에서 듣기 좋으라고 만든 거 아닌가요? 그런 의심이 늘 들어요.''''

    정치 얘기는 가능하면 꺼린다는 승훈 씨도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포퓰리즘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정치인들이) 경제민주화를 하실 거면 위에 있는 부가 아래로 내려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요.''''

    역시 취업 걱정이 앞선다.

    ''''등록금도 좀 내려줬으면 좋겠고요, 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가난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게요, 공부해서 벗어나려 했더니 빚 먼저 지고 사회에 나가게 됐어요, 참 우습죠?''''

    재벌개혁과 순환출자금지 등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물었다.

    ''''취업이 화두가 돼야지요, 서민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생활비와 등록금도 낮춰야하구요, 허울뿐인 경제만 운운해 사람 눈과 귀 가리는 정치인은 없어져야 돼요 정말.''''

    통계청이 집계한 6월 청년실업률은 7.7%로 전년동기대비 0.1%포인트 증가했다. 취업할 의사와 능력은 있지만 잠시 구직활동을 중단한 비경제활동인구와 파트타임직에 있으며 구직활동을 하는 취업애로계층을 합한 실질 청년실업률은 20%를 훌쩍 넘는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아닌 현실이 됐다.

    청년인턴제 지원에만 정부는 올해 2.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난 2009년부터 3년간 공공기관에 채용된 인턴 3만5,000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은 4%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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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경제민주화는 결국 고용과 소득의 문제''''라며 ''''사회경험도 없이 고용 무한경쟁에 내몰린 20대 청년들이 가장 열악한 세대"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대기업은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일자리를 줄이고 대신 중소기업에 채용을 떠넘기고 있다''''며 ''''결국 이는 고용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한 위원장은 이어 "결국 경제민주화 논의는 재벌개혁은 물론 청년일자리 창출이나 중소기업 고용의 질 향상 등에도 초점이 맞춰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인턴이요?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로 쓰일 뿐이죠"(지원 씨)

    "부모님한테 잘 해드리지도 못하고 송구스럽죠, 못난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하고요, 물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앓아요."(지원 씨)

    "''뽑아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안 뽑히는 거 알지만 그래도 뽑혔으면 좋겠어요"(승훈 씨)[BestNocut_R]

    "고3 때가 가장 힘든 줄 알았는데 지금이 제일 힘들어요, 취업하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겠죠"(승훈 씨)

    20대 청년들이 많이 아프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희망과 기대보다는 좌절과 외면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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