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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짧은 세계사/제프리 블레이니/휴머니스트
'만약 2400년경에 나올 역사책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언급한 사건 가운데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마치 로마 시대나 아즈텍 시대에 지극히 중대한 것으로 여겼던 역사적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겐 전혀 무가치하게 느껴지듯 말이다.'
200만 년 인류 역사를 450여 쪽의 책 한 권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어떤 뼈대를 세워 도전하겠는가. 정치 제도 사건 연도 어떤 것을 떠올려도 2, 3권은 족히 넘을 듯하다.
'아주 짧은 세계사'는 이 재미난 도전에 성공한 책이다.
다음은 책의 첫 문장. '그들은 아프리카에 살았고, 200만 년 전만 해도 소수에 불과했다. 거의 인간과 흡사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후손보다는 체구가 좀 작았다. 똑바로 서서 걸었으며 어딘가를 기어오르는 데 능숙했다.'
인류의 선조를 가볍고 빠르고 새롭게 설명한다. 전체 31장으로 이뤄졌는데, 처음 절반 가까이 유럽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유럽은 단지 그리스·로마인의 활동 무대 정도에 머문다.
이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은 이렇다.
'사실 세계사는 오랜 옛날부터 아프리카와 아시아, 소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무대로 펼쳐졌으며, 그 주도권이 유럽 문명으로 넘어간 것은 최근 사오백 년 사이의 일이기 때문이다.' 루스벨트, 처칠, 가리발디 등 최근 150년간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20세기는 단지 간략하게 더듬고 넘어가는 작은 점일 뿐이다. 여기에는 지은이의 고뇌가 담겨 있다.
'각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세기를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과 같은 유혹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균형잡힌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외줄타기를 시도한다. 지나치게 내용을 압축하지 않으면서도 군살을 붙이지 않으려 한 노력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런가 하면 황허의 신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생활방식, 인도산 인디고가 푸른색에 끼친 영향 같은 에피소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 나름의 가치와 상징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 이유다. 역대 주요 제국과 그 영역을 유심히 살피는 작업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현재처럼 강력한 제국을 통해 점점 좁아지는 세계는 이 책에서 반복되는 단골 소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