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주차요원 하는데 경제학 석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법조

    "주차요원 하는데 경제학 석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글로벌 인권국 초석 ''난민법'' 시행 D-1년…난민신청자도 생계비 등 지원

     

    온통 ''스마일''이다. 작달막하고 통통한 체구에 사람좋은 웃음, 귀동냥으로 배운 한국말도 수준급.

    18일 인천 부평에서 만난 토나 욤비(45. Thona Yiombi)씨는 까만 피부색만 빼면 영낙없는 한국의 동네 아저씨였다.

    욤비씨는 2002년 콩고민주공화국을 탈출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국가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엘리트였던 그는 졸지에 두 차례나 비밀감옥에 투옥됐다. 독재정권의 불법성을 지적한 보고서를 냈다는 이유였다.

    욤비씨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탈옥해 사랑하는 부인과 세 아이를 두고 목숨을 건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일단 중국 베이징에 피신한 뒤 각국 대사관들의 문을 두드린 끝에 한국 대사관에서 방문 비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중국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동맹국인데다 인권 취약국이어서 오래 머물 수 없었어요. 태국 등 다른 국가들이 모두 문전박대할 때 한국이 절박한 나의 손을 잡아주었어요. 사지에서 나를 구해준 것입니다"

    ◈ 6년의 고통과 기다림

    [BestNocut_R]하지만 한국에 대한 고마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9월 도착한 한국에는 오랜 고난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지만 정치적 박해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기각됐고 그러는 동안 불법 체류자로 전락해 단속의 눈길을 피해다녀야 했다.

    ''희망의 땅'' 한국은 독재정권 하의 고국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사료공장 등에 불법취업해서 번 돈과 난민지원단체와 교회 등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해야만 했다. 아파도 돈이 없어 병원 진료는 엄두도 못냈다.

    욤비씨는 행정소송까지 거쳐 2008년에야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무려 6년만이었다. 꿈에 그리던 가족들도 그제서야 한국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됐다.

    ◈ 새로운 희망 ''난민법''

    그러나 욤비씨에게 6년의 고통과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불법체류자 신세이면서도 난민신청자들을 위한 NGO(비정부기구)활동에 앞장섰던 욤비씨에게 대한민국은 ''난민법''이란 큰 선물을 안겨줬다.

    2009년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난민법은 지난해 연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2월 공포됐고 내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난민법 시행으로 난민심사관과 난민위원회 등 전담기구가 설립돼 난민 심사 및 이의신청 절차가 신속·공정·투명해지고 난민지원시설 건립을 통해 난민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난민에게만 주어지던 각종 지원을 난민신청자에게까지 확대해 소송완료 시까지 생계비와 주거시설, 의료, 교육 등을 지원하게 된다.

    진정한 글로벌 인권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욤비씨는 "난민 문제는 나의 일인만큼 난민지원단체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해왔고 캐나다 요크대에서 난민 지원 관련 연수까지 이수하고 왔다"면서 "대한민국의 난민법 제정과 시행은 중국에서 내게 방문비자를 내줬을 때보다 더 고마운 일이며 내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 남은 과제…관심과 공감

     

    하지만, 앞으로 풀어야할 과제는 많이 남아있다. 경제학 석사에다 2010년 성공회대에서 NGO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욤비씨의 직업은 한 병원의 주차요원이다.

    "주차요원에게 경제학 지식이나 NGO 활동 경험이 무슨 쓸모가 있겠어요. 난민이 인정돼도 일자리가 없습니다. 여전히 생계는 위협받고 있어요"

    난민법 제정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선 부처간 협조를 통한 실질적인 지원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난민과 난민법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관심과 공감대 형성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박재현 사무관은 "난민법이 제대로 이행돼 난민들이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난민에 대한 국민과 기업 등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6월 20일은 2001년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의 난민협약 가입 20주년이기도 하다.

    인천 부평의 주민자치센터에서 진행되는 욤비씨의 무료 영어수업에 참여하는 박구하(67.여) 씨의 말은 난민 문제의 앞날에 밝은 빛을 던져준다.

    "욤비 선생님이 너무 재밌게 인간적으로 잘 가르쳐주셔서 나이 든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 있어요. 난민법 시행을 계기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욤비 선생님과 같은 난민들을 잘 보듬고 보살펴야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