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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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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아프가니스탄

    [변상욱의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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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지난 1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총기를 난사해 1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아프가니스탄에 10년 동안 주둔해 애매한 전쟁을 계속해 온 미군에 대한 철수 여론이 국제적으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아프간 주둔 미군이 저지른 사건 중 큼지막한 사건들을 돌이켜 보자.

    ◇ 아프간 주둔 미군 잔혹사

    △2002년 7월의 결혼 피로연 오폭 사건.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읽어보자.

    "미군은 1일 새벽 2시쯤 아프간 중부 우루즈간주 데라우드의 카카라크 마을의 결혼 축하행사장을 폭격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40여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며 파키스탄에 있는 <아프간이슬람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100여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여성과 어린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월, 시신 훼손 집단 방뇨 사건.

    "12일(한국시각) 유튜브 등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숨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프간 현지인 시신 3구에 미 해병대원 4명이 바지춤을 벌려 집단방뇨하는 동영상이 게재됐다. 총 39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미군들은 ''잘 가라, 친구야'' ''소나기 같은 오줌''이라며 시신을 희롱했으며 일부 병사는 ''동영상 찍었느냐''며 촬영사실을 확인을 하기도 했다... 리언 페네타 미 국방장관은 미 해병대원의 행동을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2년 2월 말에는 △미군 병사의 코란 소각으로 몇 주일 동안 격렬한 반미시위에 무력충돌까지 일어나 약 30명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과 6명의 미군이 죽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그것은 학살이다. 무고한 시민들을 의도적으로 죽인 것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절규했다.

    어느 국가의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학살하지 말라고 주둔군에게 절규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프가니스탄의 참담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아프가니스탄은 30년 째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실업률이 40%를 넘는다고 한다. 왜 아프간은 침략과 내전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할까?

    ◇ 점령되어도 정복되지 않는 아프간

    아프가니스탄에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 유목에 아편 농사가 전부이다. 그런데 과거 제국주의가 인도로 가는 길목이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잇는 대륙의 인터체인지 격인 요충지이다.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좋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가스와 석유의 수송로는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가혹한 기후, 거친 산악지형, 강인한 투쟁정신이 아프가니스탄의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강대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정권을 장악하는 건 쉽다. 그러나 완전정복은 극히 어렵다.

    2400년 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도 동방정책에 따라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길목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반군들의 투쟁에 시달린 알렉산더는 견디다 못해 아프간 지도자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며 화해에 나서야 했다.

    그 뒤로 백인 훈 족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고, 그 다음 페르시아가 침략해 이후 이슬람 문명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 13세기 칭기즈 칸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 때 수로가 파괴되면서 비옥한 토지가 사막으로 변할 만큼 가혹한 정벌이 이뤄졌다고 한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의 경작 가능 면적은 국토의 10% 미만이다.

    그 다음 19세기 러시아와 영국이 서로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겠다고 다투다가 러시아를 밀어낸 영국이 꼭두각시 왕을 내세워 통치했다. 그러나 무장항쟁이 계속돼 끝내 영국이 굴복했고 재차 점령을 시도했다 다시 실패하면서 영국은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왕정은 영국보다는 러시아가 믿을 만 하다고 보고 친러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50~60년 간 평화가 유지됐으나 미국이 아프간에 눈독을 들이고 미국과 아프간 두 나라 관계가 좋아지자 소련이 견제에 나섰다.

    소련은 친소련 공산정권을 내세우다 곳곳에서 반란군이 저항하자 드디어 직접 아프간 정복에 나섰다. 그리고 미국,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는 아프간에 군사지원을 퍼부으며 소련에 저항하도록 했다.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10년 간 소련에 맞서 싸워 1989년 소련군을 아프간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그러나 미군의 지원을 받은 세력들 간에 친탈레반 - 반탈레반 연합으로 내전이 이어졌다. 그러다 9.11 테러로 미국이 개입해 탈레반 집권 세력을 몰아내고 반탈레반 연합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0년 동안 전쟁의 공포가 이어지며 사회와 사람들 모두 상처입고 병들었다. 필요한 건 군사적 안정 뿐 아니라 치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점령군이 되어버린 미군이 양민학살과 코란 모독 등으로 민중의 자존심을 훼손하며 민심이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미군 역시 2002년 아프간 전쟁 이후 1,000 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명분을 찾아 철수해야 할 시점이나 과연 테러를 핑계로 점령한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를 포기할 지 의문이다.

     



    ◇ 영화 ''칸다하르'' - 다리 하나만 줘요!

    가장 전쟁의 피해가 큰 칸다하르 지역은 탈레반 세력의 최후 거점이었던 지역으로 미군이 집중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한 쪽 팔을 지뢰로 잃은 사내와 국제적십자 캠프의 여 간호사가 다툰다)

    - "내 팔 하나만 줘요"
    - "여기는 팔 없어요, 다리만 있어요"
    - "난 다리는 둘 다 있어요, 팔이 필요해요"
    - "팔은 없다니까요, 다리 없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 "그럼 다리라도 하나 줘요"
    - "아니 자기 다리 둘 다 있는데 다리를 달라면 되요?"
    - "언제 지뢰 밟아 날라 갈지 모르니 하나 가지고 있을래요"
    - "안돼요,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다리 얻으려고 모두 1년 넘게 기다려 왔단 말이예요"

    - "그럼 내 친구 다리라도 하나 줘요, 그 애는 두 다리 모두 없는데 돌볼 가족도 없이 산단 말이예요"
    - "믿을 수 없어요. 다들 자기 다리 얻으려고 1년 전부터 기다렸는데 친구 다리가 다 뭐예요"

    - "그럼 우리 어머니 다리라도 하나 줘요"
    - "왜 말이 자꾸 바뀌어요, 이번엔 어머니라네"
    - "우리 어머니 아프고 힘들어요, 다리 하나 갖다 줄래요"

    이 때 적십자 헬기가 날아오고 의족 몇 개가 낙하산에 매달려 공수되어 내려온다. 캠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낙하산을 쫓아 뛰기 시작한다. 대부분 젊은 사내들이다. 그런데 두 다리로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다리가 셋이다. 목발 둘, 자신의 다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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