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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前의원 "박정희 前대통령의 문란한 사생활, 10.26 원인"



정치 일반

    김재홍 前의원 "박정희 前대통령의 문란한 사생활, 10.26 원인"

    박정희 신화, 유신 때 교육받은 사람들이 지금 50-60대이기 때문
    여인이 동반된 대통령의 술자리, 한달이면 10번씩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의 아버지? 산업화도 절차가 중요

    김재홍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방송일 : 2012년 1월 16일 (월) 오후 7시 30분■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출 연 : 경기대 김재홍 교수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2011년이 5.16군사쿠데타 50주년 된 해였었고요. 올해는 유신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 대선이 있는 해이고, 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확고부동한 대선 주자로 앞장서 있는 그런 상태인데, 그래서 그런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최근에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라는 책을 내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김재홍 교수, 지난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하셨던 분이지요. 박정희 대통령 연구 전문가이시기도 합니다. 잠깐 광고 듣고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정관용>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김재홍 교수, 오늘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재홍> 예,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관용> 오래간만입니다. 언론사 기자 하시다가 박사학위 하시고, 또 한국 현대정치사 쪽 주로 그쪽을 하셨고. 그렇지요?

    ▷김재홍> 그렇습니다. 한국 정치론입니다.

    ▶정관용>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책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잖아요.

    ▷김재홍> 처음 아니지요. 예.

    ▶정관용> 몇 번째 내신 겁니까?

    ▷김재홍> <박정희의 유산="">이라는 책이 98년도에 나왔고요. 또 그 전에도 3, 4, 5공 권력 비화에 대해서 4권의 책을 펴낸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그걸 총정리해서 조금 더 다듬어서 낸 책입니다.

    ▶정관용> 기자시절부터 이쪽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시고.

    ▷김재홍>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걸 또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김재홍>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국내 그럼 박정희 연구의 전문가, 최고 전문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요. 제목이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왜 이렇게 붙이셨어요?

    ▷김재홍> 그러니까 박정희 권력,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연구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2011년 작년은 5.16쿠데타...

    ▶정관용> 50주년.

    ▷김재홍> 50년이 되는 해이고, 올해는 또 유신 쿠데타 40년이 되는 거기 때문에...

    ▶정관용> 그렇지요.

    ▷김재홍>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흔히 10년, 20년, 50년 단위로 끊어서 역사적인 의미, 평가를 하는 게 관행인데, 작년에는 별로 객관적인 5.16군사반란이라고도 하는데요, 역사가들은. 학술회의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정관용> 생각해보니까 그러네요.

    ▷김재홍> 예, 제대로 안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주평화복지포럼이라고 주로 야권 인사들이, 원로들이 결성한 단체인데, 거기에서 본격적인 학술대회를 한 3차례 했습니다. 여러 정치학, 또 사회학, 경제학 교수들이 참여했고요. 올해 유신 권력, 유신 쿠데타 40년을 즈음해서는 그 영향 때문도 있겠지만, 역사학자들이 큰 학술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치학자, 정치학회보다는...

    ▶정관용> 역사학계에서?

    ▷김재홍> 역사학자들이 더 나서는 것 같습니다.

    ▶정관용> 그나마 그건 다행이네요. 뭐 역사학자가 되었건, 사회과학자가 되었건 좀 객관적 평가, 이제는 할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김재홍> 예.

    ▶정관용> 그런데 제목은, 제목을 왜 이렇게 붙이셨어요?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김재홍> 아, 제목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용서하는 주체는 그 정권 하에서 피해 받은 당사자 국민들 아니겠습니까?

    ▶정관용> 그렇겠지요.

    ▷김재홍>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데, 그 국민들, 피해자들 중에서 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박정희를 진정으로 용서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작년 연말쯤에 그 추운 영하 10도 안팎의 날씨에 일본 대사관 앞에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였어요. 그 울부짖는 광경이 지금도 선합니다만, 그중에 한분, 한분, 두 분이 외치는 목소리가 그거였습니다.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박정희가 그분들을 끌고나간 것은 아니지만 일본과 협정을 맺을 때에 그분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정관용> 못했지요.

    ▷김재홍> 해결하지 않고, 사실은 막은 책임이 있어요.

    ▶정관용> 그러니까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은 아무도 용서 안 했다?

    ▷김재홍> 예, 말하자면 피해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았다는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요.

    ▶정관용> 그런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 평가, 여론조사 같은 걸 해보면 항상 인기도 1등이 박정희 전 대통령 나와요.

    ▷김재홍> 예, 항상 1위지요.

    ▶정관용> 그거 어떻게 보세요?

    ▷김재홍> 그게 항상 논란의 초점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치문화가 바뀌려면, 역사연구의 대상이 객관화되려면 보통 30년을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정치문화는 조금 더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정치권력의 교육, 정치교육, 주입교육의 흔적이 사라지려면 30년 가지고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우리나라 박정희 신화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정관용> 더 지나봐야 된다?

    ▷김재홍> 그렇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박정희 체제 아래에서 주입식 정치교육을 받았던 세대가 지금 50대, 60대, 70대입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김재홍> 우리사회 중축입니다. 그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면서 어떻게 배웠지요? 대표적으로 국민교육헌장을 낭송...

    ▶정관용> 외웠지요. 암송했지요.

    ▷김재홍> 예, 외우면서 다녔지요. 끝에 꼭 국민교육헌장, 뭐뭐뭐 하고 끝에 꼭 뭐가 있습니까? 몇 년 몇 월 며칠 대통령 박정희, 까지 외운 것입니다. 대통령 박정희가 교육자는 아니잖아요. 교육 철학자 아니잖아요. 그런데 국민교육헌장을 대통령 이름으로 선포하고 그걸 외우게 한 것입니다. 그런 국민들이 지금 50대, 60대로 남아있는 한 박정희 신화는...

    ▶정관용> 여론조사하면 그렇게 나온다?

    ▷김재홍> 그럼요.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정관용> 자, 그래서 2011년, 2012년 이 시기 박정희에 대한 책을 내셨는데, 이번 책에서는 박정희 연구도 여러 측면을 다룰 수가 있잖아요. 주로 어떤 점을 주목하셨는지. 특히 사생활을 좀 많이 다뤘다, 이런 평이 있던데요.

    ▷김재홍> 우선 박정희 권력의 문제점을 짚었는데요. 왜 박정희 권력이 문제가 있었고, 국민들을 탄압했고, 결과적으로 비극으로 종말을 맺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사생활 처음에 다룬 것은, 말하자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운에 간 10.26사건, 그 원인을 저는 세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바닥으로부터, 밑으로부터 올라온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 압력이었지요.

    ▶정관용> 그렇지요.

    ▷김재홍> 또 얼마나 많은 민주화운동인사들, 학생운동 간부들, 종교인들이 몸을 던져 투쟁했습니까. 그 압력입니다. 그걸 보고 김재규 중정부장이 아, 이거 큰일 났구나, 하고 느낀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미국과의 갈등이지요. 그거는 뭐 자주노선도 아닙니다. 나중에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라는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요. 세 번째가 아까 말씀하신 사생활 문란 문제인데요. 사생활 문란과 방탕이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 하는 것이 당시 김재규, 10.26거사의 주역인데, 김재규 부장의 판단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 사생활 문제는 우리나라 정서상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기자로서 제한적으로나마 써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10.26 사건의 매우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래요?

    ▷김재홍> 왜 그러냐 하면,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입니까.

    ▶정관용> 심복 중의 심복이지요.

    ▷김재홍> 그럼요. 동향이고 선후배 관계이고, 또 이렇게 계속 중용해왔고 한 것인데, 마지막에 권총을 쐈는데, 그냥 쏴서 죽인 게 아니고요, 확인사살을 하거든요. 조준사살. 그것은 인간적인 경멸감, 환멸감 아니면 저는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아, 그런 것까지 겹쳤다?

    ▷김재홍> 겨눠서 쏘아서 죽인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그 사생활 문란에 대한 환멸이 작용했다고 저는 분석하고요.

    ▶정관용> 그런 부분에 대한 증언 같은 게 요즘은 좀 나옵니까?

    ▷김재홍> 법정 증언이, 녹음 테이프로 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그 법정은 비공개 재판이었잖아요.

    ▷김재홍> 비공개 재판이었는데, 그 당시 계엄사 법무관실에서 전부 다, 풀 텍스트를 녹음을 해놓았지요. 그것을 복사해서 가지고 있던 분이 계셨어요.

    ▶정관용> 누가요?

    ▷김재홍> 법무관실 문관하던 분인데, 신분은 밝힐 수가 없고요. 지금 오래된 이야기고요. 제가 그런 기사와 글을 많이 쓰니까 저한테 연락을 해와서...

    ▶정관용> 그래요?

    ▷김재홍> 이미 90년대 초의 일입니다만, 그 녹음 테이프 전체를 제가 입수했고요.

    ▶정관용> 본인이 그렇게 복사해서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 안 되는 거지요? 그분이?

    ▷김재홍> 사실은 직무상 취득한 어떤 지식, 정보에 대해서 유출하는 것은 불법일 수 있지요. 그런데 또 그것이 역사적 진실을 알기 위한 국민의 알 권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또 판단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

    ▶정관용> 그래서 아무튼 그것을 김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 지금?

    ▷김재홍> 그렇지요. 그것을 자기가 영리적으로 써먹은 게 아니고 언론에 제공해서 역사적 진실을 알리겠다, 하는 것이었다면 저는 판단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전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 전체를 공개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김재홍> 그거를 상당 부분 지금 써 왔고요.

    ▶정관용> 이 책에도 담으셨고?

    ▷김재홍> 예, 이 책에도 많이 썼고요. 처음에 1990년대 초만 해도 상당히 제한적이었어요. 왜냐하면 반발하는 쪽이 있었기 때문에... 갈수록 그런,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공개의 폭은 넓힐 수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정관용> 그 공판 과정에 법정 증언 내용들을 보면 적나라한 사생활, 이런 것들이 다 드러납니까?

    ▷김재홍> 거기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증언들이 나오는 것인데요.

    ▶정관용> 예컨대 어떤 것이 새로운 것입니까? 밝혀지지 않았던 것 가운데?

    ▷김재홍> 아,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아는 사람들은 많이 알지만,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전파되지 않은 게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어떤 거요, 예를 들어서?

    ▷김재홍> 예를 들어서 술과 여자의 문제인데요. 10.26 당일날 사건 현장에 여인 둘이 동석했다는 것은 다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요, 그런 술자리, 여인이 동석한 장면이 한달이면 사흘에 한번 꼴로, 10번씩 했다는 게 그 당시에 비밀 대통령 요정을 관리한,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관리를 한 것입니다.

    ▶정관용> 그것도 사실 이미 알려져 있었지요.

    ▷김재홍> 이미 알려져 있지요.

    ▶정관용> 대연회, 소연회 이런 방식으로 쭉 있었다는 것들.

    ▷김재홍> 그렇지요. 대행사, 소행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여인 둘은 밖에서 조달을 해왔고, 그 역할을 하는 중정 의전과장이...

    ▶정관용> 있었고.

    ▷김재홍> 대통령 채홍사라고 불렸고. 그런 사실들이 사실 아는 층이 그렇게 많지 않고요. 또 구석구석에 들여다보면 매우 의미 있는 것들이, 아직도 천착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관용> 자,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국민적 저항, 미국과의 갈등, 사생활 문란 같은 것들이 겹쳐서 비극적인 죽음으로까지 간 그 과정을 또 특히 이번에 많이 담으신 그런 책인데.

    ▷김재홍> 예.

    ▶정관용> 오랫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구하고 이렇게 해왔던 입장에서, 한 마디로 인간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 우리 김재홍 교수는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김재홍> 인간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뭐 객관화시켜서 말씀을 드리자면, 굉장히 출세주의자였고 권력주의자였고, 기회주의자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변신의 달인이었지요. 일제 때에 사범학교면 우수한 사람들이 갔어요. 또 일제 때 교사면 상당한 대우를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군인 다음으로는. 군국주의기 때문에 군 장교들이 더 행세를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걸 버리고 일본 육사, 만주군관학교를 거쳐서 갔고, 해방이 되니까 바로 또 광복군에 합류하지요. 광복군을 통해서 국군 경비대 장교가 됐는데, 그때 남로당 군사 프락치가 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해방 정국에서는 좌익 정당들이 상당히 주도권을 행사했던 시기였어요. 영향력이 컸습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또 그쪽에 줄을 댔다?

    ▷김재홍> 그랬습니다. 또 자기 집안에, 자기 형이 또 남로당 조직책이었고요, 그러다가 나중에 이제 숙청 대상이 되어서 체포되어서 군사 프락치들을 다 진술을 하고 자신은 나중에 또 다시 군에 복귀하지요. 그리고 이제 군 장교가 다시 되어서 좌익 척결주의자로...

    ▶정관용> 바꾸고.

    ▷김재홍> 강경한 대결주의자로 나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신하면서 자신의...

    ▶정관용> 출세를 위해?

    ▷김재홍> 자신이 선택한 어떤 인생관이나 철학이나 이념도 일관성을 가지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자꾸 바꾸면서 권력을 추구하는 출세주의로 나가는 그런 인간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관용> 인간형은 그렇게 규정하셨고, 대통령으로서 18년을 집권했는데, 공과를 이야기한다면요?

    ▷김재홍> 먼저 말씀드리면 역시 산업화의 아버지다, 근대화의 아버지다, 라고들 지지자들이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산업화, 근대화를 이루는 방법과 과정, 절차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정관용> 물론이지요.

    ▷김재홍> 얼마나 많은 미성년 노동자들, 여성 노동자들, 취약 계층들이 피땀 흘려서... 출퇴근 시간도 없었지 않습니까? 초과근무시간... 그렇게 쌓아올린 경제건설이었는데,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의 공로로만 치는 것은 이건 너무 억울하다, 이건 맞지 않다, 하는 것이고요. 그 산업화, 공업화, 근대화가 그 자체를 위해서, 산업화를 위해서, 또 국민의, 국민 행복을 위해서만 했다고 그러면, 그것은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은 자기 권력 강화와 자기 독재 강화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 산업화와 근대화를 추진한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1960년대에 경제성장을 이루어놓고 그 다음에는 조금 민주화를 해주고 그 다음에 또 개발독재를 해가고 했어야 맞지 않습니까? 그게 정치학 일반 이론입니다. 말하자면 박정희 자신이 선경제 건설, 후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입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김재홍> 60년대 초에 그랬어요. 5.16후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대 개발독재 해서 어느 정도 경제개발 만들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는커녕 어떻게 했습니까.

    ▶정관용> 유신.

    ▷김재홍> 거꾸로 더 반민주적인 유신 독재, 유신 쿠데타로 간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봐도 참 드문 일인데요, 경제적인 기반을 만들어놓고 더 후퇴하는, 반민주적인 체제로 가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산업화나 경제성장을 만든 것은, 이것이 다 자기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서, 자기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용한 것이지, 산업화 자체를 위해서, 뭐 국가 발전 자체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했다고 보기 어렵지요.

    ▶정관용> 산업화도 박정희 대통령의 공이라고 말하기는 무리다?

    ▷김재홍> 저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 대신에 과를, 제가 공과를 여쭤봤는데, 과로 치자면 뭐 셀 수 없겠군요, 김 교수 보시기에는.

    ▷김재홍> 예, 과로 치자면, 제가 보기에는 참 부끄러운 야만시대였지요.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세계 시사영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더러운 전쟁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1977년부터 시작된 남미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비델라 정권의 고문, 테러, 악행입니다. 의문사. 그런 것을 지칭해서 더러운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더러운 전쟁이 우리나라에서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1960년대 중반부터 이미...

    ▶정관용> 진행이 되었다?

    ▷김재홍> 자행되기 시작한 것이고요. 부끄러운 세계 제1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 더러운 전쟁의 주도자, 말하자면 남미 군사정권의 선배이지요. 더러운 전쟁의 원조 아니겠습니까. 그 피해자들이 용서를 해야 제대로 용서가 되는 것인데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근태 선배님을 생각하면... 이 책의 내용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참 우연찮게 맞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고 더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만, 그런 분들이 지금도 곳곳에 많이 계시는데요, 공적으로는 용서하고 화해하고 통합으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요.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정관용> 그러나 속마음으로는?

    ▷김재홍> 예, 김대중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탄압받았고,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전두환, 5공 세력에게까지도, 5공 세력과의 화해를 추구하지 않았습니까? 정치인이기 때문에 저는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진정한 용서였겠습니까? 그런 점을 봤을 때에...

    ▶정관용> 마음속으로는 용서할 수 없다?

    ▷김재홍> 저는 인간으로서, 모르겠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승화시킬 수도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노벨 평화상을 또 받을 수도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통상 보통 상식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 용서하려면 아직 멀었고,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관용> 아까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그래도 산업화에 대해서는 공이 있다, 이런 정도로 그냥 쓱 지나가는데 김재홍 교수께서는 그것도 꼼꼼히 뜯어봐야 한다, 이제 분석을 해주셨잖아요.

    ▷김재홍>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그 가운데 특히 뭐 미성년 노동, 여성 노동, 야간 노동, 이런 등등의 표현을 쓰셨는데, 그럼 그런 걸 다 지키면서 언제 그렇게 빠른 산업화를 할 수 있었겠느냐, 이런 식으로 이제 되돌이키는, 반박하는 분들은 어떻게 말씀하시겠어요?

    ▷김재홍> 그게 바로 개발독재론자들의 주장이지요. 그러면 일정한 기간 단계적으로 그렇게 해서 성장을 시켜놓고, 압축성장을 이른바 시켜놓고, 그 다음에는 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성장과 분배가 있으면 성장을 이렇게 해놓았으면 나중에 분배를 좀 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민주화도 하고. 그런데 그런 일이 박정희 정권 때는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관용> 그러니까 70년대에도 여전히 더 성장했어야 한다, 라는 이 시각을 가졌던 거지요.

    ▷김재홍> 예, 계속 그렇게 개발독재로만 갔지 그거를 분배 또 복지, 또는 이렇게 민주화 쪽으로 가는 건 없었다고 생각하고요. 또 하나 경제성장을 이야기할 때에 흔히 놓치는 부분이 국민들의 실생활 부분인데요. 경제에서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저는 물가 앙등지수하고 인플레율하고 실업률일 것입니다. 또 무역수지 적자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 기간에 인플레율, 물가지수와 실업률을 보면 이것은 완전히 경제성장이 허구입니다. 수치를 대보면, 유신체제 아래에서 인플레율이 7년 동안 연평균이 15.6%가 인플레율입니다. 물가지수도 말하자면 인플레율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정관용> 그렇겠지요.

    ▷김재홍> 전두환 정권 때 10%였습니다. 노태우 정권 때 인플레율 7.4%입니다. 김영삼 정부 때 4.8%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 3.6%이고요, 노무현 정부 때 3.3%입니다. 말하자면 독재가 완화될수록...

    ▶정관용> 물가는 안정된다?

    ▷김재홍> 인플레율과 물가는 낮아진다는 이상한 패러독스, 역설적인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고요. 실업률을 보더라도 국민 생활과 직접 관련된 것, 특히 서민들과 관련된 부분은 실업률 아니겠습니까?

    ▶정관용> 그렇지요.

    ▷김재홍> 아니, 총체적인 경제성장 지수가 높으면 뭐하겠습니까. 일반 국민들 사이에 실업률이 높으면 그것은 어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연평균 실업률을 보면은요, 이거는 아까 말씀드린 것도 마찬가지인데, 월드 데이터 뱅크, 세계 자료은행, 매우 권위 있는 경제기구이지요. 거기에서 발표한 이 실업률은 전두환 정부 이후부터예요. 전두환 정권 때 연평균 실업률이 한국이 4.11%에요.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3.6%입니다. 그러니까...

    ▶정관용> 민주화를 해야 민생도 좋다?

    ▷김재홍> 예, 민주화를 해야 실질적인 경제성장입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경제성장의 내용을 좀 뜯어보자, 말씀하셨고.

    ▷김재홍> 그렇습니다. 질적인 경제발전이 중요한 것이지요.

    ▶정관용> 많은 분들의 지적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제는 좀 그래도 좀 화해하고 통합으로 가자는 목소리들도 있는데, 대통령 선거도 있는 해에, 특히 박근혜 위원장이 지금 앞장 서 있는 이런 상황에 이런 책을 낸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질문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김재홍> 예, 많이 받았습니다.

    ▶정관용> 짧게 한 말씀만.

    ▷김재홍>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한 것인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와 관련이 없이도 부일장학금, 부일재단 문제에 있어서 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학재단의 이사장으로서, 봉사 자리인데, 연간 1억 3,500만원, 그 이후에 2억 5천만원의 연봉을 받은 것은 문제가 있어요.

    ▶정관용> 예, 그건 또 별도로 따져야 될 것이고. 그러니까 어쨌든 유신 40주년 때문에 펴냈습니다만, 공교롭게 지금 상황이 그렇다?

    ▷김재홍> 그렇습니다.

    ▶정관용>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답변으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김재홍> 예, 뭐 앞뒤가 이제 좀 바뀐 것이지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라는 책 펴내신 경기대학 김재홍 교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재홍> 감사합니다.

    ▶정관용> 오늘 여기까지이고요. 저는 내일 저녁 6시에 다시 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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